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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③ 117 해 7월 20일에 궐석 재판이 진행 되었고, 이위종과 이준(故)은 종 신형, 이상설은 사형이 선고되었 다. 이상설은 해삼위(블라지보스 토크)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하 다가 1917년 순국하였다. 이위종 은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갔으나 그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광무제의 강제 폐위와 군대해산 이토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 미로 1907년 7월 18일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를 특사로 서 울로 불러들여 광무제의 책임을 물어 강제 퇴위를 시키고 융희제 (순종)를 세웠다. 이 즉위식에 대 한제국의 두 황제는 참석하지 않 았고, 융희제와 비슷한 체형의 내시가 대역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토는 7월 24일에 정 미칠조약 체결, 같은 달 27일에는 언론탄압을 하기 위한 ‘신문지법’, 29일에는 집회 및 결사를 금지하 는 ‘보안법’등을 잇달아 공포하여 대한제국을 무력화 시켰다. 31일 에는 군대해산령을 내려 대한제 국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실제 군대해산을 지휘한 인물 은 한국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 [長谷川好道]였다. 대한제국의 군 대해산 직후 대대장 박승환의 자 결로 분이 넘친 한국군이 일본군 과 교전하였으나, 결국 제압되 고 말았다. 지방의 진위대 민긍호(閔 肯鎬) 등이 병사를 모아 의병 투쟁 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➊ ➊ 1907년 8월 1일 대대장 박승환 참령의 자결과 대한제국군의 봉기 상황을 그린 그림 (나무위키 제공) ➋ 프랑스 일간지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 1907년 8월 4일자에 실린 대한제 국 군대와 일본군의 전투 장면 그림(네이버 지식백과)] ➌ 1910년 8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기념 이토 히로부미 기념엽서(필자 제공)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