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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 120년 전인 1905 년도 을사년이었다. 이 해는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 상 최대의 비극적인 해이다. 일제 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乙巳勒 約, 제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었 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보호’한다 는 미명 아래 강제로 외교권을 박 탈하였다. 대외적으로 대한제국은  식물 국가가 되었다. 그 장본인이  한국통감부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 부미(伊藤博文, 1841~1909)이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③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그의 흔적들 (2) 대한제국을 박살낸 ‘일본의 영웅’  ‘동양평화’ 내세우며 1905년 을사늑약 강요  고종(광무황제) 폐위, 군대 해산 총독 사이토 장충단에 박문사 설립 글  이재범(전 경기대학교 부총장) 헤이그 특사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토의 1905년 11월 을사늑약 강제 체결로 빚어진 한민족의 비 애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1907년 의 헤이그 특사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3월 24일, 광무황제(고 종)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은밀히 중명전으로 불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 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광무황제는 특사로 정사 이상 설(李相卨), 부사 이준, 통역관 이 위종(李瑋鍾)을 선발하였다. 국내 에는 이준만이 있었다. 이상설은 용정(龍井)에서 민족운동을 하고 있었고, 이위종은 아버지인 마지 막 주러시아공사 이범진과 상트 폐테르부르그에 있었다. 이준은 이상설, 이위종과 합류하여 6월 15일 헤이그에서 개막한 제2차만 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6월 19일 베를린에서 각국 수석 대표 에게 보내는 문서를 인쇄하여 6 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이들 은 비공식 회의자료에 문서만 게 재했을 뿐이며, 일제의 방해로 각 국 대표들과의 면담은 실패하였 다. 이준은 분을 참지 못하고 7월 14일에 순국하였다(장례식은 9월 6일). 헤이그 특사는 일제 당국에 의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16 202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