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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당시31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2년 목포 산정동 출생 목포에서 산정초등 문태중 홍일고등학교 졸업 1991년 전남대 금속학과 입학 1998년 2월 전남대 금속학과 졸업 2000년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 조사요원으로 입사 2002년 1월 근로복지공단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 2003년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결성, 광주본부장 활동 2003년 10월2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 2003년 10월 31일 오후 3시 운명 |23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전남 목포에서 출생해 대학을 졸업하고 ’00년도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다 ’02년 1월에 계약직이 되었다. 무엇보다 근로자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 였고 일이 끝난 후에는 공부방에서 청소년들의 학업을 도와주던 동지는 주변의 동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며 고통 받는 모습을 무수히 지켜봐야 했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병가가 없어 월차를 사용하여야 하 고 결근을 할 경우에는 무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동지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인간취급 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은 사업비예산에 인건비가 아닌 재료비에 잡급으로 처리되었다. 비정규직은‘인간’이 아닌‘재료’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었 다. 이런 처지는 동지로 하여금 가족들에게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없게 했고 공 부방의 아이들에게‘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사람다운 삶과 희망’에 대한 얘기를 당당하게 할 수 없게 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동지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 비정규직노동 조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동지는 계약해지 위험을 무릅쓰고 요지부동, 철옹성 처럼 굳게 닫힌 대화의 문을 열고자 정부청사로, 공단본부로 내달리면서 6개월 동안“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동지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자본의 논리로 무장하고 차별을 당연시 하는 사용자와 정부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무관심이었다. 동지는 파업을 앞두고 분신을 결단했다. 비정규직 철폐와 참여하지 못하는 조 합원들이 깨어나 함께 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청년 이용석 노동열사! 그 이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에 영원 한 빛으로 남을 것이다. 끝내살리라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