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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최고 선생은 전주 최해윤 공의 4남으로 1924년 4월 19일 대구시 서구 원대동3가 1309번지에서 출생하시었다. 성장함에 따라 나라없음과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통분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흑백당이란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일본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만주 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시었으며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아 충북 괴산 충남 대전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시던 중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시었다. 해방 이후에는 대구중, 대구상고, 서울한영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30여년간 수준 높은 창작활동을 통해 단편집 혹불혹 바람 등을 발간하시었고 향토 문화 예술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1984년 대구시 문화상 문학부문에 문화상을 수상하시었다. 대표작으로는 두 친구, 유치장, 산다는 것,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이 있다. 특히 손자 규철이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낙을 삼으셨고 평소 문우들과 인생과 예술을 논하시면서 말년을 보내시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시어 64세를 일기로 불구의 객이 되시고 말았으니 그때가 1988년 8월 23일이였다. 이제는 다시 뵈올 수 없음을 생각할 때 그 애통함은 하늘이 무너짐과 같으며 특히 손자 규철이는 애틋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성장해서도 잊지 말기를 지하에 계신 할아버지 이름으로 염원하며 부디 부디 극락왕생하시어 편히 잠드시기를 삼가 불소고자 엎드려 비옵니다. 서기 1988년 9월 일 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