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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⑩ 115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 본 패전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가 장 먼저 일본명 문패를 뜯어내고 우리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미나미 지로를 비방한 낙서 1941년 봄, 수원 팔달산에 소 시[小志] 소좌라는 일본인의 기념 비에 미나미를 조롱하는 낙서가 출현했다. 타도 왜놈의 비(碑) 남차랑(南次郞)아 우리 지사(志 士)를 잊지 마라 한 독립지사 낙서 필자는 우리나라 여류 서 양화가 나혜석(羅蕙錫)의 조카 나 석균(羅奭均)으로 알려졌다. 나석 균은 수원 장안문에도 다음과 같 이 낙서를 하였다. 떨쳐 일어나 한국청년아 저주 하자 남차랑을 성씨를 바꾸게 한 놈을 때려 죽 이자 (중략) 타도 일본 주살(呪殺) 남차랑 (중략)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일치 단 결하여 남차랑을 때려 죽이자 죽이자 남차랑놈을 대한독립만세, 타도 구적(仇敵) 일본 일제 말기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발급된 안동 풍산공립국민학교 졸업장 (권영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