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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3회) • 수원의 독립만세시위(3) - 수원군 장안면· 우정면 만세시위(1) 115 일 오후 9시경 수원군  장안면 덕정리 부근 산  위에서 화톳불(篝 火)을  피우며 만세를 고창하 였는데, 면내의 각 리는  일제히 이에 호응하여  산에 올라 불을 피우며  만세를 고창하였다. 면 장인 내가 거주하는 금 의리에서는 다른 면리 에서 만세를 고창하더 라도 만세를 고창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구장회 의에서도 총독의 유고(諭告: 타이름)를 알려 만세를  고창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유고의 주지대로 철저히  노력했으나, 각 리민이 만세를 고창하게 되었고 금의 리에서도 마침내 고창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지방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철도 연선 을 따라 선언서가 전파되면서 점차 확산되었다고 알 려졌다. 그러나 당시 이웃 향남면 발안 주재소 순사 였던 이노우에 카메오(井上龜雄)는 고등법원 예심계 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장안 우정면 만세시위와 관련 하여 이렇게 말했다. “1919년 4월 2일 밤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일제히  산에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또한 두 면 에서는 시위 이전에 손병희 등의 독립선언서를 배부 하거나 그 취지를 선전한 형적은 전혀 없었고, 경성  및 평양 사람이 위 두 면내에 들어와 선동한다는 소 문이 있었으므로 극력 수사해 보았으나 증거를  확인 할 수 없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 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을 역임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 우정면사무소 주변모습. 가운데 하늘색 지붕 집 뒤 묘지와 밭에 당 시 우정면사무소가 있었다. 장안면 소재지 어은리 옛 면사무소 터(옥수수밭)와 봉화시위가 일 어났던 주변 산과 언덕 장안면 3·1운동 상황을 조선총 독부에 보고한 경기도지사 마 츠나가 다케키치(松永武吉,  1869~1936). 그는 1904년 11 월부터 1908년 3월까지 일본  시마네현 지사를 지낸 자로 일본 의 독도 침탈에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