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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염 선생은, 전남 목포(木浦) 사람이다. 1928년 11월 9일 서울에서 사숙(社塾) 고학당(苦學堂) 교사 이종률(李鍾律)이 기초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정책 비판 격문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내의 다수 학생들에게 약 40장을 배포하였다. 그 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시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각 학교 대표들과 함께 회합하여 1930년 1월 15일 9시를 기해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항쟁하다가 퇴학을 당했다. 같은 해 3월, 중국으로 건너가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1932년 9월 북경(北京)에서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1932년 1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