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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용 씨는 삼일 운동의 거사가 탑골 공원에서 일어날 예정 시간에 맞추어 팔각정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정재용 씨는 민족 대표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전날 밤에 대표들이 모여서 탑골 공원에서 독립운동이 발발되어 생겨날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로 거사를 포기하고 우미관에서 약식으로 갖는다는 계획을 알지 못한 채로 서성이고 있었던 때였다. 12시를 기다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가던 때에 드디어 2시 정도가 되었을 때에 4, 5천명의 학생들이 팔각정으로 부근으로 몰려오는 장면을 정 씨가 목도하고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는 영감이 그의 머리를 스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준 독립선언문 한 장을 펄쳐들과 팔각정으로 올라가 낭독하여 삼일운동의 함성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발생된 것이다. 따라서 그날의 생생한 장면을 누구보다도 증언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정 재용 어른이셨다. 정 씨는 삼일운동 역사의 증언자이면서도 용케도 그날 사건의 장본인으로서의 현행범으로 체포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 일에 종사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지하운동의 발각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출처 : 서울고16회 동기회 카페 1919년 삼일운동의 주역 정재용 씨에 대한 회상(김홍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