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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일신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우시었다. 19세에 서리 농촌학교를 설립하여 그 학교의 스승이 되셨으며 20세 때 기미 3.1운동이 일어남에 조국을 찬탈한 일본에 대하여 복수를 다져오던 의혈청년들을 이끌고 상무향 병영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펼치시었다. 1919년 4월 4일 독립운동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된 선생은 혹독한 고문 취조 끝에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옥고를 겪으시기도 하시었다. 출옥 후 대부분의 동지들이 고향을 떠나갔으나 선생은 끝까지 향리에 남아 순국4동지의 추념봉제와 후손들의 애국심 선양에 헌신하시다가 서기 1986년 2월 11일에 서거하시니 향년 86세였다. 조국에서는 선생의 애국충정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해 주시었다. 가족으로는 미망인 김해김씨(金海金氏), 아들 재우(載雨), 병우(炳雨), 대우(大雨), 딸 춘자(春子) 등을 남기시었다. 지축이 흔들리고 산천초목도 떨리던 이 강산 이 고장에 태극기 높이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