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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우재룡 애국지사 공적비(白山 禹在龍 愛國志士 功績碑) 백산 우재룡 지사님은 구한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자유당 정부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을 살아오셨다. 지사님은 일제를 처음부터 무력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그 기세를 꺽기 위하여 종횡무진으로 활동하였으며 1,2차에 걸쳐 21년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감옥살이를 하시면서도 꼿꼿하게 기개를 지키신 분이다. 지사님은 1884년 1월 3일 경남 창녕군 대지면 왕산리에서 부 우채희님과 모 진주강씨의 1남 5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고 호는 백산 자는 이견이다. 지사님은 19세 때인 1903년 대한제국 육군의 대구진위대에 입대하여 참교로 5년간 복무하셨고 일제의 강요로 우리 군대가 해산을 당하자 24세 때인 1907년부터 산남의진 연습장을 맡아 항일투쟁에 큰 공을 세우셨고 1년여 만에 체포되어 종신징역형을 선고 받아 2년을 복역하던 중 1910년에 소위 합방특사라는 이름으로 석방되었으나 1915년에 박상진 등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이 조직의 지휘장을 맡아 동지 권영만과 함께 일제의 현금 수송 우편마차를 습격 거금을 탈취하여 독립군 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전국을 무대로 동지를 규합하고 활동하였다. 그 후 만주로 건너가 길림광보복회를 조직하고 이상룡, 김동삼, 김좌진 등과 함께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1919년에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평양과 경성 등지에서 무력투쟁을 전개하면서 군자금 모금에 노력하였고 1920년에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아 주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아 18년간 복역하시고 54세 때인 1938년에 출옥하셨다. 출옥 후 서울을 래왕하시면서 옛 동지들과 함께 대한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 애국운동을 계속하시다가 1955년에 7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으셨고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백산 우재룡 애국지사님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으로서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은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백산 우재룡 지사님의 거룩한 애국 애족 정신을 마음에 새겨서 더욱 부강한 대한민국의 건설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애국지사 백산 우재룡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문학박사 이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