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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⑨ 113 을 입었다. 강의사는 체포되어 복 역 중 1920년 1월 2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다. 김상옥 의사(1889~1923)는 3·1독립운동 이후인 4월에 비밀 경사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 여 『혁신공보』를 발간하는 등 독 립사상을 계몽 고취하였다. 그 해 12월에 암살단을 조직하고 1920 년 4월에는 전라도 지방의 친일 민족반역자 여럿을 총살하였다. 그 뒤 사이토 마코토와 일본 고관 암살 계획을 추진했나 실행에 옮 기지는 못하였다. 김의사는 1923 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 탄을 던졌으며, 1월 17일부터 일 본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많은 피 해를 주었지만, 결국 1월 22일 새 벽에 자결하였다. 나석주(羅錫疇, 1892~1926) 의 사는 1911년에 보명학교를 졸업 한 뒤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 식회사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 다. 마침내 12월 28일 오후 2시 5 분경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폭 탄을 던졌고(불발), 다시 동양척식 주식회사 경성 지점으로 가서 총 을 난사하고 폭탄을 투척하였다. 자신은 자결했다. 김지섭(金祉燮, 1885~1928) 의사는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지 고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 고 일본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24년 1 월 5일 저녁 7시 경에 왕궁 입구 의 다리에 폭탄 3개를 던졌다. 폭 탄은 불발이었으나, 김의사는 체 포되어 이치가야형무소[市ケ谷 刑務所]에 수감되었다. 이해 11월 에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 을 선고 받았고, 다음해 8월의 공 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지바형무소[千葉刑務所]로 이감되 었다. 1928년 2월 뇌내출혈로 순 국하였다. 이봉창(李奉昌, 1901~1932) 의 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 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쇼 와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그 러나 명중을 시키지는 못하고 체 포되어 도요타마[豊多摩]형무소 ➐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세워진 김상옥 의사 동상 ➑ 김지섭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일본 왕궁 앞의 니쥬바시(二重橋) ➐ 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