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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2회) • 수원의 독립만세시위(2) -수원군 송산면(1) 113 로 홍면옥(洪冕玉)이 수원경찰서에서 신문을 받았다. 그는 35세의 남자로,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511번지 에 본적과 주소를 두고 있었다. 9간 초가집 한 채, 밭 2일경으로 큰 재산은 없었으나, 남의 논 15두락을 소 작하며 5인 가족이 어렵지는 않게 살고 있었다. 김명 제(金明濟)는 장인이고, 홍준옥(洪㻐玉)은 남동생으로 송산면 서기로 일하고 있었다. “주모자는 나와 송산면 중송리 이규선(李奎善, 30 세 가량)과 사강리 홍효선(洪孝善) 3명이다.” 그는 검사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계속 말 했다. “우리가 집합시킨 사람은 200명 정도 된다. 서신면 과 송산면 사람들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폭 약 90cm의 흰 옷감 에 염색을 한 태극기를 만들어 왔다.” 3월 26일 1919년 3월 26일. 그날은 집집마다 내는 호세(戶 稅) 납부일이었다. “구장 집으로 모이시오!” 마을 주민 120명이 호세를 징수하는 구장 홍명선 (洪命善) 집에 모였다. 계모임을 칭탁했다. 이때 주도 자의 1인인 홍효선이 말했다. “송산면 사무소로 갑시다. 가서 독립만세를 부릅 시 다!” 일동은 이미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있었다. “좋습니다. 갑시다!” “갑시다!” “일단 면사무소 뒷산에 집결합시다!”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었다. 참여자들이 달려 나가 동리 사람들을 더 모았다. 참여자 김성실(金成實)은 말했다. “3월 26일 홍면옥, 홍효선 등이 만세를 부르라고 찾아왔으므로 면사무소의 뒷산으로 가서 태극기를 세우고 다수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면서 마을 내 여러 곳과 육일리 등을 돌아다녔다.”고 하며 홍면옥 홍효선 등이 주도하였음을 말했다. 사강리의 홍복룡(洪福龍)은 말했다. “3월 26일 오전 11시쯤 왕국신(王國臣, 본명 王光 演)이 와서 만세를 부르러 오라고 해서 같이 따라나 가 면사무소 앞에 갔다. 약 40명과 함께 만세를 불렀 으며, 다른 사람들은 각기 동네를 돌면서 또 만세를  불렀다.”  송산면 만세시위 주도자 홍면(홍면옥), 그의 장인 김명제, 아우 홍준옥, 왕광연, 오광득(왼쪽부터)(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