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page


113page

1951년 7월 녹음이 우거진 틈을 타서 북괴군 이현상 주력부대가 무풍면 철목리로 부터 벌한재를 넘어 온다는 제보에 무주경찰서로부터 '구천동부대가 벌한재에 매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중우적삼에 짚신을 신고 총탄을 수건에 싸서 허리띠에 차고 출동을 하였는바, 현지에 먼저 도착한 적의 기습을 받아 벌한재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고 처함한 후퇴를 하였다. 동년 9월12일밤, 사방봉으로 적 이현상 주력부대 850명이 습격하여 서로 섞에 육박전까지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아군사망75명, 생포 36명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51년11월20일 안지들 전투에서는 적의 작전에 속아, 집합하여 인원점검중 적의 기습을 받아 아군사망 48명, 생포30여명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현두식의 처(전보교 21세)와 자 현아기(생후9개월)를 반동의 처자라 하여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눈을 파내는등 처참히 죽였으며, 심곡리 안우용, 임낙중, 한무순, 유맹술은 석유가 없어 불도 켜지 못한 깜깜한 방에 앉아 국군이 수복하여 북진하고 있다'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것을 밖에서 엿듣고 '반동'이라고 주이려 삼공리로 끌고 오는 도중, 사위 임낙근이 보안리에 살고 있었는데 큰소리로 '사위 이제 나는 죽으로 간다'고 하자 '반동이 거기에도 있다'고 하며 사위 임낙근까지 데려다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