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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5년 3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한 군자금 모금을 추진하던 중 한 동지가 검문에 걸린 게 발단이 되 었다. 최주영은 예심 기간까지 합 쳐 2년 9개월간 옥살이를 한 후 1930년 9월 출소하는데, 고문으 로 얻은 병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최주영은 결국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한 지 3년 만인 1933년에 38 세의 젊은 나이로 숨지고 만다. 최주영이 태어난 곳(후암동 104)은 지금은 도로에 편입되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그를 기억할 수 있는 표지판조차 세워 져 있지 않아 쓸쓸함을 더한다. 옛 삼판심상소학교 터와 옛 용산 중학교 터 일제강점기 일본군 병영지가 있던 용산은 일본인이 많이 거주 하던 지역이었던 탓에 일찍부터 일본인 학교가 여럿 들어섰다. 중 등교육기관으로는 관립용산중 (1918년 설립)과 경성제2공립고 등여학교(1922년 설립)가 있고, 초등교육기관으로는 1903년에 설립된 용산심상소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가 들어섰는데, 삼판심 상소학교(1919년 설립)도 그 중 하나였다. 이들 학교는 일본인 자녀가 대 부분이었지만, 간혹 조선인 군 인이나 철도종사원 자녀도 입학 이 허용되었다. 일본육사를 나 와 일본군 대위까지 지낸 유재흥 (1921~2011)과 조선총독부 판사 를 지낸 민복기(1913~2007)도 삼판심상소학교에 다닌 조선인 이었다. 유재흥은 아버지가 일본 육사를 나온 후 일본군 대좌까 지 지낸 유승렬(1891~1958)이었고, 민복기의 아버지는 궁내부대신으 로 있을 때 1910년 8월 ‘경술국 치(庚戌國恥)’에 앞장서 일제로부 터 자작(子爵) 작위를 받은 민병석 (1858~1940)이었다. 광복 이후 일본인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는 우리 학교가 새롭게 들어섰다. 현재 삼판심상 소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삼광초 교, 용산중 자리에는 용산중과 용 산고가 들어서 있다. 수도여중과 수도여고가 있던 경성제2공립고 등여학교 자리는 2025년 말에 서 울시교육청이 옮겨올 예정이다. 김익상 은거지(이태원동 288) 의열단의 김익상 의사(1895 ➍ ➍  체포된 최주영 등 다물단원 3인의 검찰 송국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1928.2.5) ➎  서울삼광초등학교 교문에 있는 동판  ➏  일본인 학교인 옛 삼판심상초등학교 자리에는 해방 이후 서울삼광초등학교가 들어섰다. ➎ 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