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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대둔산의 옛이름은 한등산이다. 1894년 봄, 고부에서 비롯된 동학농민혁명은 충청, 경상, 강원, 경기, 황해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가을에는 수만의 농민군이 삼례에 모여 서울을 향해 진군하였다. 11월초에 이르러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은 일본군의 무력에 밀려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최공우가 이끄는 농민군 부대는 11월 중순부터 이곳 대둔산으로 들어왔다. 석두골 위쪽 형제바위 옆 150미터 높이의 암반을 근거지로 삼아 산의 북쪽 염정골(현재 논산군 벌곡면 도산리 일대)을 비롯한 주변 마을과 연계하면서 3개월 동안 정부군과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인 항전을 계속하였다. 대둔산 농민군 진지는 이듬해인 1895년 2월 18일 새벽 안개를 틈탄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김석순은 한살난 아들을 품에 안고 150미터 절벽을 뛰어내려 장열한 최후를 맞았고 전사한 농민군 25분 가운데에는 20대 후반의 임산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25분의 농민군이 처절한 최후를 맞은지 10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그 장열한 희생을 잊고 살아왔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이에 1998년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원광대학교 사학과와 함께 이곳 대둔산 농민항쟁 유적지를 찾아내고, 완주군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에서는 이곳에서 희생된 25분의 농민군 영령을 추모하고 우리 근대사를 열어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 새로운 민즉사의 거름을 삼고자 이 작은 돌을 여기에 세운다.
2001년 2월 18일 신순철 짓고 여태명 쓰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 완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