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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헌 위계룡선생은 분명 면암선생과 더불어 초기 의병항쟁을 하신분이시다. 하지만 공훈록에 등록된 위계룡선생은 한자는 동일하지만 생년과 공적내용이 다르다. 오헌선생이 서훈을 못받은 것인지, 공훈록이 잘못된것인지 확인을 해야할것 같다. 위계룡(魏啓龍, 1921. 5.17생은 )전남 담양(潭陽) 사람이다. 일찍이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할 뜻을 품고 있던 그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단말마적 발악을 계속하던 1944년 1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 재학 중 일본 희로(姬路) 제54부대에 을종간부 후보생으로 입대하였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펼 것을 결심하고 미군(美軍)이 일본에 상륙할 때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여 미군에게 군사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조국의 독립을 도울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인 학도병 1명과 동포 1명을 동지로 포섭하여 활동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45년 3월 일본 군법회의에서 소위 국체변혁에 관한 죄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