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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하여 후퇴의 길이 막힌 북괴의 인민군은 산과 마을에서 은둔하며 현지 주민에게 현물세를 바치고 농지분배까지 강요하였다. 음력(1950년) 섣달 열엿샛날, 급기야 국군 화랑사단이 구천동 전지역을 재점령하는 순간 미리 도주하지 못한 북괴군의 일부가 마루밑에 숨어있다가 화랑사단 소대장과 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소대장이 부상을 당하자 국군 화랑사단은 구천동 전주민이 빨갱이라고 판단하여 전주민을 집결시켜놓고 양민 김정갑, 김수권2명을 총살하고 전주민을 총살하려하자 이 지역에서 작전중이던 현두식 방위소위는 긴박한 상화을 보고 '여기는 부역한자와 빨갱이가 없다'며 이 현두식이 책임지겠다 쏘지말라라고 하여 전 주민의 목숨을 구했다.
또한 인근지역 심곡리에서도 방위소위 류해웅은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다수의 주민의 목숨을 구하였다.국군 화랑부대는 적의 활동근거지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깊은 골에서부터 상오정까지 일시에 불을 질러 주민들은 맨몸으로 소개를 가게 되었다.
이듬해 봄까지 정부에서는 전방을 지키느라 완전수복을 해줄 여유가 없었기에 당시 구장들과 지역을 걱정하는 주민들이 성금을 거두어 대구 총시장에서 총28정과 실탄을 구입, 그 이듬해 구천동 청년들을 모아 5월12일경 수복을 하였다.
한 낮에도 총을 논두렁에 놓고 일을 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며 먹을것이 없어 밀기울과 수러치등을 먹어가며 전투와 농사를 함께했다. 넓은들에 곡식이 누렇게 일자 빨치산이 배방리 사방봉을 습격 치열한 전투끝에 75명이 전사, 36명이 생포당하고 2차소개를 가게되었다.
이듬해 다시 수복하였으며, 그 동안 수 많은 전투에서 훈련미숙으로 적이 들어오면 총을 쏘지못하고 '왔다'고 소리만 쳤으며 자기가 은폐한 돌에 총알이 맞아 돌 파편이 얼굴에 맞자 곁의 동지에게 '나 죽었지?'하고 묻기도 하는등 웃지못할 사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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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비극! 공산당의 만행. 내고장을 목숨바켜 지킨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이 비에 세겨 후세에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일한 비극이 없기를 바라며 이 비를 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