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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공산면 남창리 2구 월호마을 입구 도로변 육탄십용사 중의 한 분인 박평서의 묘를 찾아왔다.
북한은 1949년 4월 남천(개성 북방)점에 주둔하고있던 인민군 1사단 제3연대 병력 1천여 명을 송악산 후방에 집결시켰다가 5월 3일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 38선 남쪽 일대의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당시 우리 군은 실지 탈환을 위해서 10개소의 토치카를 파괴해야된다고 생각하고 81미리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착해 육탄 공격을 하기로 작전을 세운다. 지원순으로 선발된 서부덕 이등상사를 공격대장으로 김종해, 윤승원, 이회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등 9명이 분담 고지를 향해 3백미터 지점까지 포복으로 접근 완강한 저항과 기관총 사격으로 입은 총상도 무릅쓰고 목표지점까지 기어이 접근 적의 진지로 몸을 던져 포탄 파편과 함께 토치카를 분쇄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육탄10용사는 작전 직전에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적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수류탄을 들고 돌진하다 전사를 했는데, 박 하사를 포함해‘육탄10용사’라 부르게 됐다.출처 : 나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