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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 한조가 1925년 육군대 장에서 예편하고, 1927년 사이 토 마코토의 뒤를 이어 제4대 조 선총독으로 부임했다(1927.12  ~1929.8). 그러나 그는 ‘배금(拜 金)장군’이란 별명에 걸맞게 총 독 재임중 뇌물 수수사건으로 불 명예스럽게 물러나고 말았다. 후 임으로 제3대 조선총독을 지냈던  사이토 마코토가 다시 부임하였 다. 이번 호에서는 제4·5대 조선 총독 야마나시와 사이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⑨ 제4·5대 조선총독 야마나시 한조 사이토 마코토 제4대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1927.12~1929.8)   제5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929.8~1931.6) 야마나시, 뇌물사건으로 물러나 사이토, 두번이나 조선총독 지내  글  이재범(전 경기대학교 부총장) 화려한 군 경력의 야마나시 한조 야마나시 한조도 다른 조선총 독들과 마찬가지로 육군사관학교 를 졸업하고 대장이 되어 육군대 신에 올랐던 화려한 군 경력의 소 유자이다. 야마나시는 가나가와 [神那川]현 히라쓰카[平塚] 출신으 로 1886년에 수재라는 평가를 받 으며 소위에 임관하여 청일전쟁 에서는 중위, 러일전쟁 때는 소좌 로 참전하였다. 1911년에는 육군 소장으로 보병 제30여단장, 그리 고 보병 제1여단장, 참모 본부 총 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6 년에 육군 중장이 되었고, 1918 년 육군차관, 1921년 6월 육군 대 신, 12월에 대장으로 진급, 그 뒤 육군대신에 오르는 등 요직을 두 루 거친 인물이었다. 1923년 군 사참의관(軍事參議官)이 되었는 데, 바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관동 계엄사령관 겸 도쿄 경비사 령관에 임명되었다. 1925년 예 편하고, 1927년 사이토 마코토 의 뒤를 이어 조선 총독으로 부임 했다(1927.12~1929.8). 야마나 시의 전임은 사이토 마코토였으 나, 사이토는 1927년부터 제네 바에서 열렸던 세계해군군축회 의에 참석하였다. 궐석이 된 조 선총독직은 우가키 가즈시게[宇 垣一成]가 임시로 맡고 있었다 (1927.4~1927.10). 돈을 밝혔던 장군, 야마나시 야마나시는 돈을 밝혀 ‘배금장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10 202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