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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4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01회) 수원의 만세시위(1) 3월 16 · 23일 수원 화성 안, 서호 일대 수백명 만세시위 3월 25일 수원 읍내 만세세위, 상인들은 철시로 동조 3월 29일 기생 시위도 일어나 3월 하순 장안 · 우정면에서 순사 처단 등 격렬한 만세시위 전개 글  이정은(본지 편집위원, 3 ·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전통적인 자족도시 수원 1776년 미국이 독립하던 해에 즉위한 정조(正祖) 는 프랑스 혁명이 나던 1789년(정조 13)에 수원도호 부 관아가 있는 땅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옮 기고, 수원도호부 관아를 비롯한 읍치 전체를 팔달 산 동쪽 신기리(新機里), 현재의 수원시 팔달구 신풍 동 일대로 이전했다. 이곳 주위에 약 2년 반에 걸쳐 5.7km(4,600보)의 성곽을 축조하여 화성(華城)이라 하고, 자족적인 도시 기반 시설을 조성했다. 노론이 장악한 조선 정치판을 뒤집어 새판을 구축하고자 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이자 미완의 수도이전 계획 이었다. 정조는 국비 6만 5천냥을 수원 백성들에게 꾸어주 면서 공업과 상업을 촉진했다. 팔달문 밖에 남시장 (일명 성밖시장, 현 영동시장)과 북수동의 북시장(일 명 성안시장)이 섰다. 해남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많은 외지인들도 수원으로 모여들었다. 북 부 보시동(현 북수동) 8부자집은 전국에서 이주해 온 상공업자 집안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수원군 은 남쪽의 청북, 포승, 현덕, 오성 지역을 진위군에 내 주고, 남양군의 음덕, 마도, 송산, 서신, 비봉, 팔탄, 장 안, 우정면과 광주군의 의왕, 안산군의 반월면을 합 하여 수원군이 되었다. 수원지역 만세시위 수원 주변부 장안 · 우정면 등지에서는 3월 하순 순 사를 처단하는 등 전국에서 대표적인 격렬한 만세시 위가 일어났다. 4월 15일 향남면 제암리의 야만적인 집단학살 사건도 이 지역 치열한 독립만세 사건과 관 련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수원 읍내 지역 만세시위를 중점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