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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4년 3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로도 유명한 벽초(碧初) 홍명희 (1888~1968)는 1939년부터 해 방될 때까지 노해면 창동리(244- 1)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창5 동주민센터 옆에 <홍명희 집터>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충북 괴산 출신의 홈명희는 1912년에 출국하여 상하이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에 참여하 여 활동하다가 1918년에 귀국하 였다. 1919년에는 3·1운동이 일 어나자 충청북도 최초의 만세운 동을 주도하여 1년여 간 투옥되 기도 했다. 1929년 12월에는 광 주학생독립운동을 지원한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2년 여 기간 또 옥살이를 했다. 1928 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 에 《林巨正(임꺽정)》을 연재하여 일약 인기 작가로 부상하였다. 해방정국에서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펼쳤던 홍명희는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 당사 회단체연석회의에 참가한 후, 귀 환하지 않고 북에 머물면서 우리 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한국 노동자의 상징, 전태일 열 사 옛 집터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1948 ~1970)은 한국 노동운동을 상징 하는 인물이다. 전태일이 살던 집 (도봉구 해등로 195)은 현재 삼익 세라믹아파트 112동 쪽이었는데, 전태일 집터 표지판은 아파트 앞 쪽 창경초등학교 모퉁이에 있다. 전태일은 버스요금까지 털어 가 난한 어린 여성노동자에게 풀빵 을 사주는 바람에 동대문 평화시 장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퇴근하 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전태일은 1970년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스물셋의 나이에 자신 의 몸을 불살라 노동문제를 사회 적 현안으로 부각시켜냈다. 어머 니 이소선 여사(1929~2011)도 아 들의 뜻을 이어 노동자의 권익향 상을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함석헌의 옛집에 세워진 함석헌 기념관 함석헌기념관은 도봉구민들의 ➎ ➏ ➎  벽초 홍명희 옛집터 답사 장면  ➏  전태일 열사 옛집터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