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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2월31일 수요일 11 (제228호) 독자마당 범용 인공지능(AGI)의 발전이 상상을 초월하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인간의 지식 수준을비약적으로증대시키고있다.개인 별능력격차도평준화하는혁명적변화를 가져오고있다.인공지능앱에서질문만잘 하면 그 어떤 정보도 다 알려준다.모든 사 람의 지식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주기에 이제부터는, AGI를 성과를 혁신적으로 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자 기회로 생각 하고적극활용해야할시대가되었다. 인공지능 AI로 인하여 촉발되는 이러 한대전환의시대에뒤처지지않고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젊은이들처럼 하겠다 는 적극적인 자아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 매사를미래의시각에서현재를봐야한다.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도 그렇게 가겠거니 하면서 현재의 시각을 계속 갖고 간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더이상 없다. 왜냐하면 AI로 인하여 급변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비전을보지못하는장님이되기때문이다. 우수한학생들이의대를선호하고,로스 쿨에 진학하여 변호사 되려고 하는데, 이 는참 잘못된 판단이다.AI가대체할대표 적인 직업이 의사와 변호사라고 하는데, 그 없어질 직업을 갖기 위해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 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를 보는 가장 잘못된사례라고아니할수없다. 인공지능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 다.임종인 교수에 따르면, 5년 후에 는 지금보다도 1,0 00배 성능 좋은 A I가 나온다고 한 다. 4배, 8배만 되 어도 엄청난 변화인데,1천배라면 상상 그 이상이다.그래서현재의기준으로미래를 보면안되고,AI와로봇,바이오기술등이 가져올 미래의 시각에서 현재를 봐야 한 다.‘변화의 필연성’을 빨리 인지하고 선제 적으로행동해야한다. 대전환이라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방향 을 잃지 않으려면, 시중(時中)과 중정(中 正)이라는 개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 다.시중(時中)은 변화하는 상황(時)에 맞 추어 가장 적절한(中) 선택, 즉 때(時)의 중심(中)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행동 철학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 변 한다. 새롭게 도래하는 흐름(trend)를 빨 리파악하고대처하는지혜이다. 종전의관행이나생각에갇히지않는유 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 시대가 변하면 생 각이나 행동의 방식도 그 상황에 맞춰서 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행동이라 도 때의 흐름과 맞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사람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유 연함도시중의지혜이다. 중정(中正)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균형(中)속에서도리에어긋나지않 는 바름(正)을 지키는 처신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은 중정이 아니 다.자신의위치를자각하고그에맞는역할 을 수행하며,친소관계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공정을유지하는것이중정이다.시중 속에서 중정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존경도받는다.등불이되는사람이다. AI 대변혁 시대에 시중과 중정의 자세 를 갖기 위해서는 파괴적 학습이 필요하 다. 나를 성공하게 했던 지식이나 경험이 새로운 시대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에비워내야한다.그러면서도온고이지신 (溫故而知新)으로, 나의 정체성과 핵심가 치는 굳건히 지키되, 그것을 표현하는 기 술과 방식은 시대에 맞게 바꿔나가야 한 다. 셋째는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으로,일회성이아니라일상적인습성으로 혁신하는버릇을가져야한다. 내 전공이나 업계 사람만 만나면 고인 물이된다.다른분야책을읽고,다른직종 사람을 만나 '낯선 자극'에 나를 노출시키 는이종(異種)교배가필요하다.이재부터 는 스마트폰에 ‘구글제미나이’, ‘쳇GPT’ 등 AI앱을 깔아놓고, 시시때대로 자료 찾 아달라, 무엇을 알아봐 달라, 보고서를 만 들어 달라, 손자에게 보낼 편지 써달라 등 을습관화해야한다.긍즉통(窮則通)은궁 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이다. 궁리 하여 변하게 되면 통한다. 문제를 해결한 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노인들도 빨리 구글제미나이 AI앱을 일상화하자. 그리 고젊어지자.새롭게일하자. AI대전환시대,미래의시각에서현재를봐야한다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뷺한사람의젊은날실수는어디까지따 라붙어야 하는가?뷻 최근 조진웅 씨가 과 거 소년범 경력 논란 끝에 활동을 중단하 고 배우 은퇴를 선언한 사건을 두고 정치 권의반응이엇갈리고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처벌받은 일을 다시 들춰 과도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주장하 고,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범죄 카르텔” 이라는 과격한 언어까지 등장했다. 사건 본질보다 이념 대립 구도로 흡수되는 모 습이 반복되는 현실이 오히려 더 안타까 울뿐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븮송경용븯 신부의 “그 시절을 들춰 오늘의 시점에서 판단한다 면 많은 아이들은 숨도쉴 수없다”는 말과 븮한인섭븯 교수 “소년법은 처벌과 함께 교육과 개선 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제도”라는 말 을 인용하며, 조 씨 가 청소년기에 처벌을 받았고, 이후 성실 한 삶을 살아왔다면 그 사실 역시 존중되 어야한다고말한다. 송 신부와 한 교수 발언에는 과거의 과 오를 짊어진 이에게도 다시 살아갈 여지 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 겨 있다. 반면븮국민의힘븯등야권에서는다른시 각을내놓는다. “피해자는평생고통받 는다”는논리와 함께,조씨에대한옹호는특정진영을위 한 편들기로 비춰진다는 비난도 이어진 다. 국민의 힘 어떤 정치인은 ‘공직자 소년 기 흉악범죄 공개법’과 같은 입법 추진까 지 언급하며 논쟁을 더욱 정치화하는 모 양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실제로 사회가 고민해야할문제의본질<청소년범죄의 재평가 기준과 재사회화>를 얼마나 반영 하는지의문이남는다. 정치가 사회적 논쟁에 의견을 표하는 것이 그들 역할일 수는 있다.하지만 지금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 개인 삶을 바라보 는 시선조차 이념의 색깔로 나뉘어버리 는현실이다. 잘못의 크기,처벌의 적정성,반성과 변 화의 가능성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지 ‘좌파냐 우파 냐’의잣대로재단될사안은아니다. 나는 한때 교도관으로 근무했다. 그곳 에는 악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도 있 었지만, 한순간 판단 오류나 불운으로 철 창안에들어온이들도적지않았다. 사회는 그들의 실수를 분명히 바로잡 아야한다.그러나그실수를‘평생형’으로 만드는 것까지 사회가 허락받은 것은 아 니다. 소년의 일탈을 이유로 한 사람 전체 인 생을 영구적으로 제한하는 사회는 건강 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소년원은 처벌 의공간이기도하지만동시에‘학교’라불 린다. 청소년을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교육·교정의 장이라는 의미다. 그곳 을 거쳐 나온 사람이 반성과 노력으로 삶 을 바로 세우고 사회적 성취까지 이루었 다면, 그것은 비난의 근거가 아니라 재사 회화 제도의 목적이 실현된 사례에 가깝 다. 그러한 삶의 전환은 정치적 공방 재료 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응원해야 할 가 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 과 거를들춰낼때마다이념필요에맞춰잣 대를 늘였다 줄이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이번 사건은 조진웅 개인의 문제가 아 니다. 우리 사회가 인간보다 이념을 먼저 보는가, 아니면 이제라도 그 순서를 되돌 릴수 있는가에대한문제다. 소년기의 그림자를 다시 끌어올려 오 늘의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우리는그쉽고편한길대신더성숙하고 더 어렵지만 더 인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딛고 살아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바 라보고있는가? 정치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사회가 그리고우리가대답해야할때다. 소년의그림자를다시끌어올리는사회에대하여 (이념의굴레를벗지못한우리정치에부쳐)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보덕공 박이관비는 나주시 남평읍 광 촌리 함양박씨 종중 선산에 조성된 묘역 에 있다. 조선시대 전기 문과에 급제한 역사인물로서 석비가 거북좌대와 생동 감있는쌍용문과화문비머리등양식적 으로 특징이 있으며, 비문은 당대 문신 학자도암이재가짓고제액글씨는유척 기,비문글씨는민우수가써서건립연대 와찬서자를알수있으며당대서예가의 글씨로서 예술성도 지니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학술적,향촌사회사적가치가크 다. ‘나주보덕공박이관비및석물일괄’명 칭으로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62호로 지 정(2024.01.17.)되었다. 박이관(朴以寬, 1459~?)은 조선전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 보덕, 사헌부 장 령,담양부사,홍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용(子 容), 호는 보옹( 빡翁)이다. 박득시(朴得 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해(朴解) 이며, 아버지는 진사 박수화(朴遂和)이 다. 박이관은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 격하여 진사가 되고 1492년(성종 23)식년 문과에오른다.출생연도는족보에1459년 으로나온다.그리고조선왕조실록에도15 03-1518년 사이의 활동 기록이 나오고 븮담 양군읍지븯에1519년기묘사화이후소요자 적 했다는 것으로 보아 1520년대 까지 활 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1518년(중종 13) 담양부사 때 도회 취재(都會取才)의 시 관(試官)이 되었다.도회 취재는 지방에 서 실시하는 시험의 하나이다. 복시(覆 試)가 있기 전년에 실시하는 초시(初 試) 외에 각도의 관찰사(觀察使)가 도 내의 교생을 가려서 매년 6월에 도회소 (都會所)를 설치하여 강론 또는 제술 (製述)을 시험해서 우수한 자를 계문 (啓聞)하여 복시에 바로 나아갈 자격을 주는 초시에 준하는 시험이다.(경국대 전 禮典 諸科奬勵).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많은 선비 가 화를 입음을 보고 조정에서 물러나 동 생 박이홍(朴以洪)과 더불어 명산을 순례 하며 자연을 즐겼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 였으며, 양친의 상을 당하매 여막을 짓고 시묘하였다.박이관이세상을떠나자남평 정광산에묘역을마련하였다. 박이관의 비는 1799년(정조 23)에 세워 진다. 비석 말미의 연기 “숭정 후 삼기미 십이월 일(崇禎後三己未十二月 日)이라 는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당시 민간에 서는 청나라 연호 대신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 기원년(1628년)으로 부터몇년이라는형태를많이썼다. 비문은 도암 이재(陶庵 李縡, 1680-174 6)가 짓고,지수재 유척기(知守齋 兪拓基, 1691-1767)가 제액 전서, 정암 민우수(貞 菴 閔愚洙, 1694-1756)가 비문 글씨를 썼 다. 이재는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희경 (熙卿), 호는 도암(陶菴), 시호는 문정(文 正),본관은우봉(牛峰)이다.부친은이만창 (李晩昌)이며,모친은 민유중(閔維重)의 딸 이며, 송준길(宋俊吉)의 외손녀다. 모계가 당대 서예로 명성을 날리던 가문인 점에서 이재의 서풍의 근원은 외가인 것으로 보인 다. 23세이던 1702년에 알성문과에 급제한 이후이조정랑,대사성,양관대제학대사헌 을 지냈다. 삶의 대부분을 도학자를 견지하 면서 명사들의 신도비와 묘표 등을 남겼다. 장성김인후신도비(송시열찬,1742년,전라 남도기념물)비문글씨를썼다. 민우수는문신이자서예가이다.자는사 원(士元), 호는 정암(貞菴)·섬촌(蟾村), 시호는 문원(文元), 본관은 여흥(驪興)이 다. 조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 며, 부친은 문충공 민진후(閔鎭厚)이다. 김 창집·김창협에게 나아가 수업하였고, 사헌 부지평,대사헌,세자찬선·원손보양관 등을 역임하였다.순창 삼인대비(三印臺碑)(17 44년, 전북 유형문화재), 안성 홍계남장군 고루비(洪季男將軍故壘碑)(1745년, 경기 유형문화재), 정읍 고암서원 묘정비(考巖 書院廟庭碑)(1747년, 전북 문화재자료) 등을썼다. 유척기는 문신 학자이자 명필가로 금석 학의 권위자이기도 하였다. 자는 전보(展 甫), 호 지수재(知守齋), 본관은 기계(杞 溪),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나주목사를 지낸 유명악(兪命岳)의 아들이다. 1714년 (숙종 40)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대사간, 호조판서, 우의정을 지 냈다.순창 삼인대 비의 제액 전서(1744년, 전북 유형문화재 ),정읍 고암서원 묘정비 의 제액 전서(1747년, 전북 문화재자료 ), 완주 안심사 사적비(安心寺事蹟碑) 제액 전서(1759년, 전북 유형문화재), 괴산 만 동묘정비(萬東廟庭碑)의 제액 전서(충북 기념물),그리고고흥송대립묘갈(宋大立 墓碣)제액전서(1750)등을썼다. 거북 좌대 위에 비신을 세운 석비이다. 비신과 비 머리는 한 돌이다. 비 머리는 앞 면에 쌍룡문이 사실적이며 뒷면은 화문을 조식하였다. 앞면부터 사방으로 돌아가면 서제액전서와,찬서자,비문,연대,세운 사 람이새겨져있다. 제액은 “시강원 보덕 박공 묘갈명(侍講 院輔德朴公墓碣銘)”, 비제는 “유명 조선 국 통훈대부 세자시강원보덕 지제교 박공 묘갈명[병서](有明朝鮮國通訓大夫世子 侍講院輔德知製敎朴公墓碣銘[幷序])”이 다. 비문은 박이관의 출자와 관직 등 행적, 선대의 세계,박이관 형제의 활동,자손록, 명문등의내용이다.후손박경흠(朴景欽) 이 이재에게 요청하여 비문을 받았고 9대 손 해겸(海謙), 해명(海明), 해돈(海暾), 당(塘) 등이 비석을 세울 때 주도하였다. 박경흠은 박이관의 둘째 아들 박명순(朴 命純)의후손으로이재의제자이다. [이 글은 향토학지에 실린 김희태 선생 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김희태 선생은 호남지역 향토사학자로 그동안 회재 박광 옥 선생 등 朴姓의 많은 선현들을 선양하 였으며, 호남 향촌사·문중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있다.] 함양박씨보덕공박이관묘비 나주향토문화유산제62호지정 보덕공박이관비 박이관비탁본 거북좌대(龜趺座)위에비신 (碑身)을세운전형적인조선 묘비양식,쌍용문(雙龍文)과 화문(花紋)장식이확인되는 장식석물븣조선후기미적·조 형적요소가반영된석조유물 로 평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5)352-7224 FAX(055)352-7225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50429 경남밀양시내일중앙길11밀성회관1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지난 2010년 8월부터 오랜 세월 한시(漢 詩)를 통해 독자들의 시문(詩文) 발전에 기 여해준 갈전 박성근 현종(사진)이 금번 12 월호(제228)를끝으로정든지면을떠난다. 꾸밈없는 언어와 깊은 사유로 매회 고전을 오늘의 삶에 잇는 선생의 한시는 많은 이들 에게위안이자배움의시간이되어왔다. 선생은 수십 년간 한시 창작과 연구에 매진하며,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소회, 역 사와 인륜의 의미를 한 수 한 수에 담아왔 다. 특히 연재를 통해 소개된 작품들은 어 렵게만느껴지던한시를생활속문학으로 끌어들이며,전통인문의가치를다시금돌아 보게했다는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최근 건 강과 연령을 고려 해 더 이상 정기적 인 집필을 이어가 기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다. 선생은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과분한 시간을 누 렸다”며“이제는마음속시를조용히다듬 는여유를갖고자한다”고소회를밝혔다. 비록 연재는 막을 내리지만, 선생이 남 긴수많은작품과글은앞으로도오래도록 읽히며 한시의 향기를 전 할 것이다. 한 시 대를묵묵히지켜온문인의발걸음에깊은 감사와존경의마음을전한다. 1934년인박성근현종은 40여년간교단 에몸담으면서참스승으로아이들을훈육 하였으며,정년퇴임 후에도 거창향교에서 한문과 논어를 강의하는 등 봉사의 끈을 놓지않고있다. 오릉보존회 거창군 종친회장,밀직부원 군파대종회장,밀성박씨대종회부회장등 을역임하면서는종친회발전에도크게기 여해 ‘자랑스런밀성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갈전박성근현종마지막한시보내븣 2010년8월부터168수(首)연재 快晴萬里晩秋天(쾌청만리만추천) 沙 長江 옐 影邊(사지장강안영변) 柔淺羽翔當戱水(유천우상당희수) 細尖口吻適釣川(세첨구문적조천) 雲中叫叫霜空樂(운중규규상공락) 月下 雪嶺連(월하옹옹설령연) 春去冬來閑寂破(춘거동래한적파) 山逾誨渡報信傳(산유회도보신전) 쾌청한만리늦은가을하늘에 물가긴강가에는기러기울어대네 부드럽고엷은날개는물을희롱하기마땅하고 가늘고뾰족한입술은냇가에서고기잡기적합하다 구름가운데애절하게울리는소리상공을즐기고 달빛아래옹옹울며눈덮인산등성이이어지네 봄에떠나겨울에찾아와한적함을꺼트리고 산을넘고강을건너와소식을전하네 옐 (안) 朴聖根(박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