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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9월30일 화요일 11 (제225호) 독자마당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공자의 중심사상은 ‘인(仁)’입니다. ‘인’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 올바르게 실천에 옮기는 일이 인간의 기본 도리라고 믿고 경학 연구를 통해 ‘인’의 참 의미를 밝히는 공부에 집중한 학자가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다산은 귀양 지에서 고향의 이복동생 약횡(若鐄)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에서 어떤 행위가 ‘인’인가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인간이 행해야 할 참 으로 많은 인한 행위가 있겠지만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반드시 행해야 할 한 가지를 가 르쳐주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리면, 커다란 말을 문 앞에 매 어두고는‘영의정의명령이오’라고말하고,또 커다란 당나귀를 뒤이어 매어 놓고는 ‘병조판 서의명령이오’라고말한다.또커다란말을뒤 이어 매어 놓고는 ‘훈련대장의 명령이오’라고 말한다.뒤따라서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이 와서 는‘나야말도없는사람이지만우리어머님의 병세가 위독합니다’라고 하면서 슬프게 눈물 을 흘린다. 네가 세수를 마쳤으면, 맨 먼저 가 난한 선비의 집으로 가서 자상하게 병세를 살 펴보고 정확히 처방을 내려주고, 그다음에야 여러 귀한 집으로 가는 것이 옳다”(又爲舍弟 鐄贈言)라고일러주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몸소 행하는 일이 공손 하고 예의 바르면 훌륭하다는 칭찬이 나오고, 훌륭하다는 칭찬이 나오면 하늘이 준 복록(福 祿)에 이르게 되니, 귀한 집안에서는 너의 생 활을후하게해주지않을수없을것이다.따라 서 동쪽에서 베풀어도 보답은 서쪽에서 나오 기도 한단다.그러므로 공자는 『논어』에서 ‘지 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知者利 仁)’라고 했는데, 이것을 일컫는 말이다”(윗 글)아우에게형이가르쳐주는지혜,이렇게따 뜻하고 부드러운 가르침이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요.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권력자들의 위 세에 굽히지 말고 가장 힘없고 가난한 집안의 위독한 환자부터 먼저 보살펴주는 인술을 베 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사회적·경제적 약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 습니다.먹고살기위해서의원생활을하는아 우,권력과부를 누리는고관대작들의집안 환 자를 먼저 보살펴준다면 당연히 큰 혜택을 받 을 수 있겠습니다.그러나 가난한 선비 집안의 환자를 먼저 도와준다면 당장은 큰 혜택을 기 대하기 어렵겠지만, 결국에는 고관대작들 집 안의큰혜택이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도 부 잣집의 혜택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인’의 효 용, 이것을 가르쳐준 다산의 지혜는 역시 뛰 어나기만합니다. “지혜로운사람은인을이롭게여긴다”라는 공자 말씀을 이렇게 적절하게 인용한 글도 드 물 것입니다. 본디 공자는 “어진 사람은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 다”라고 말했습니다.남을 도와주고 베풀어주 는 일이야 본인으로서는 손해 보는 일이지만 베풀어주는 일을 이롭게 생각하는 마음과 행 위가 바로 ‘인’의 뜻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산 처럼 실감나게 해석해주는 풀이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그렇습니다.도와주는 일은 혜택을 바라고 강자나 부자를 도와주는 일보다는 역 시가난하고힘없는 약자를 도와주는 일이 참 다운 도움입니다.영의정·병조판서·훈련대장 의그큰위세를모두물리치고가난한선비부 터도와주는다산의지혜,역시아름답기만합 니다. 지혜로운 사람,베풂을 이롭게 여긴다 한 나 라 가부강한강대국이되기위해서는'독일을넘 어서자(Beyond Germany)'라는 전략이 필요 하다.독일은세계최고의수출강국이자,뛰어 난강소기업(히든챔피언)이많으며,4차산업 혁명을 이끌고 있다. 또한, 우수한 사회복지, 경제민주화, 균형발전, 평화통일을 이루어 유 럽을이끄는국가이기때문이다. 독일 총리들은 평균 10년씩 재임하며 각 시 대에맞는비전과성과를보여줬다.특히,건국 의 주역인 아데나워 총리와 통일의 초석을 다 진 브란트 총리는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 힌다.초대아데나워총리는독일특유의'총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서방과의 연대를 강 화했으며,2대에르하르트총리는초대경제부 장관으로서'라인강의기적'을이끌고'모두가 잘사는나라'를위한사회적시장경제의토대 를마련했다. 4대 브란트 총리는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진실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동방정책(Ostpoliti k)을추진하여통일의발판을놓았으며,헬무트 콜 총리는 기민당이면서도 사민당 브란트 총리 의동방정책을이어받아통일의기회가왔을때 신속하게통일을이뤄냈다. 사민당 출신의 7대 슈뢰더 총리는 복지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 지지층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연금 및 노동 개혁을 추진해 독일경제부활의기반을다졌다. 장재언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 지도력 의 핵심 가치는 다음 세 가지에서 나온다. 첫째는 반성과 성찰이다. 과거의 국가적 잘 못을 반성하고 미래를 깊이 고민하는 자세가 독일발전의원동력이되었다.역사상최악의' 패거리 정치'였던 나치즘의 폐해를 경험했기 에, 지도자들은 무분별한 정파 싸움을 끝내고 항상 나라와 민주주의의 장점을 우선하는 정 책을폈다. 둘째는 국민과 나라 우선이다. 특정 집단이 나 정파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항 상 우선시했다.모두가 국민 앞에 한점 부끄러 움이없도록처신했다. 셋째는 실력 있는 창업의 리더십이다. 독일 에는 계보 정치가 없다.모든 총리가 스스로 새 로운비전을제시하고실력으로자신의업적을 증명하며나라를부강하게만들었다. 대한민국은지금도약이냐좌절이냐의기로 에서있다.1인당국민소득이10년넘게3만달 러수준에머물러있다.이른바'선진국함정'에 빠진것이다.박광기뉴패러다임연구소장은성 장하는선진국이되려면과거중진국시절과는 전혀다른새로운경제발전과무역전략이필요 하다고강조하고있다. 우리는 지금의 산업 및 수출 구조를 빠르게 업그레이드 해야 할 때다. 중국, 베트남 같은 후발국가들과같은줄에서서상품위주로경 쟁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공 장을수출하는방식으 로 가야 한다.즉,상품 대신 연구개발(R&D) 과엔지니어링을수출 하는 구조로 바꿔서 상대국가들도 경제발전과 사회개발을 함께하 는윈-윈전략을써야선진국으로성장할수있 다.과거의 추격자식 중진국 방식에 머물러 있 으면 앞으로도 영원히 선진국 함정에서 빠져 나올수없다는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는 한국이외교 력을강화하고,각분야에서혁신을이룬다면강 대국의 반열에 올라 국제사회의 아젠다 국가가 충분히가능하다고한다.수출구조를R&D와공 장위주로하는것은산업구조혁신이고,기업과 CEO를 디지털로 무장시키는 것은 경영혁신이 며,지방자치단체가세계시야행정을하는것은 정부혁신이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도시인구 의농촌생활인구유입도관광과홍보등혁신이 수반되어야가능하다.국가가비전을갖고이끌 어주면좋지만,그이전에라도지금국제무역환 경이 심각하니 민간 주도로라도 시급히 추진해 야할과제이다.이것이바로KIVA와같은hosp itality community 성격의 비영리단체(NPO)의 혁신적인활동이절실히요구되는이유이다. 대한민국,선진국함정벗어나강대국으로도약하자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가까운 이의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허망함으로 가득 채웁니다. 나를 이세상에있게해주신부모님두분모두 이제는저세상으로떠나셨습니다. 세월은흘러,언젠가우리또한이길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들들 기억 속에는 희미하게나마 내 부모님 자취가 남겠지만, 그마저도 머지않아 사라져 버 리겠지요. 결국 남는 것은 작은 묘자리 하나뿐일 것입니다.조금더세월이흐르면우리역 시마찬가지가될것입니다. 백 년쯤 뒤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았 다는 사실조차 잊히고 말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서전을 남겨 후대에라도 이 름을남기고싶어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런 흔적 을 남 길 분들은 아니셨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작은 글 한 편이라도 남겨드리고 싶습니 다.이글은내가20년전쯤썼던기록입니다. 아부지 인생을 이 짧은 글로 다 말할 수는 없 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나마 기록으로 남겨 놓고싶습니다. -아부지라고랄?-언젠가 어디선가 본 시 한 구절이 생각 납니다. “아부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절반이 눈물이다.” 정확한 문구는 아 니지만, 그 뜻은 오 래도록 제 가슴속 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저도 어느새 아부지가 되어버렸습 니다.두 아들 녀석들을 책임져야 할 나이 가 되었으니, 아부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제 마음속 의 아부지는 늘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였 습니다. 아부진살아생전제일에단한번도참 견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의 무관심이라 할 만큼, 집안일에는 발을 담그지 않으셨 지요.대신밖에서는늘존경을받으며,지 역유지로 활발히 활동 하셨습니다. 하지 만그로인해가정은늘불화와갈등의소 용돌이속에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태생적으로 너무 다 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충돌의 불꽃은 우 리 형제자매 청소년기 지긋지긋하게 만 들었습니다.당시 저의 가장 큰 소원은 그 런 싸움서 벗어나는 것 이었습니다.아부 지는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자유방임형이 셨습니다. 엄마는 아부지 와 정반대로 악 착같이자식들사랑하고간섭하셨습니다. 그 극단의 두 사람 사이에서 자라난 제가 때론헛웃음나오고,때론괴롭고아픈성 장기를보냈습니다.가정에무심했던아버 지에 대한 원망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출직에 나서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다른눈으로아버지를보게되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늘 휴일 이면 집을 비우고 결혼 주례를 보러 나가시던 분 이었습니다. 수백 쌍의 신혼부부 앞에 서셨고,내가만난많은사람들이제아부 지가주례를봐주셨다고했고,또아부지 를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신 아버지는 욕심 없고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저한테 아부지 모습은 집안에서 어머 니와 다투던 모습만 각인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제게 낯설면서도 새로 운 아버지 얼굴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생 각해보면,우리세대많은이들이이와비 슷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가정 에는 소홀했으나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헌신했던 아부지들. 아부지들 삶 은 자식들에게 때로는 원망으로 남았고, 시간이 지나서 야 이해와 존경으로 바뀌 기도합니다. 아부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이기도 합니다.원 망 속에도 사랑은 있었고, 거리감 속에도 그리움은 깃들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 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아부지 삶이결국우리를위한또다른방식의사 랑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아부지 가 제게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주신 날이 있었습니다.제가직장을다니면서공무원 시험공부를하던시절,수백대일의경쟁 을 뚫고 35살 나이로 마지막 국가직 7급 필기시험에합격했을때였습니다. 그때 아부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자 디띁다. 나가 니헌티 짐하나 벗었다.” 아 부지의 그 환한 웃음이 아직도 눈앞에 선 합니다. 그러나 내 점수가 커트라인에 걸려있 어서 면접에서 탈락했고, 실망스러운 아 부지 표정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때의 좌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그러고나서5년정도지나서건 강하시던 아부지는 저녁 식사 후 평온히 주무시다가 새벽녘 천식으로 세상을 떠 나셨습니다. 73세, 젊다면젊은 나이였습 니다.세상을떠난아부지,이제더는만날 수없는분.그분은나를이세상에존재하 게한유일한뿌리였고,나와가장가까운 유전자의그림자였습니다.애증을남기고 떠나신 그 빈자리 지금도 제 마음을 무겁 게짓누릅니다. 돌아보면저또한아부지께따뜻한말한 마디,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회한이늘가슴에남아있습니다.세월이 흘러 저도 두 아들 아부지 자리에 서 보니, 이제는두아들에게내가어떤아버지로기 억될지자문하게됩니다.저는아부지가걷 던길을따르지않으려무던히애썼지만,문 득문득제안에서아부지모습을발견하며 놀라곤합니다.정말다른길을걷고싶었는 데,어쩔수없이닮아가는구석들이보이곤 합니다.하지만분명한것은저는아부지와 는다른삶을살아가고있다는사실입니다. 앞으로도그럴것입니다. 아버지를 인생의 스승으로 삼아 그대 로따르는아들,또는반면교사로삼아정 반대 길을 걷는 아들. 대부분의 아들들은 그둘중하나일것입니다.하지만결국두 부류 모두 아버지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 안에서 아부지 흔적을 발견 하게 되지요.우리 아들들에게 저는 어떤 아부 지로남을까요?부디제가바라는모 습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쉽진 않겠지 만,꼭그랬음합니다. “남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야 비로소 진짜 아버지가 된다.” 그 말이 이제는 뼈저리게 와닿습니다. 아부지가 돌아가신 지 3년 뒤 저는 생전 처음으로 아부지만을 위한 벌초를 했습니다.낫이 없어친구집에서날빠진낫을빌려와,땀 을뻘뻘흘리며한시간을넘게풀을손으 로뜯다시피하며묘를정리했습니다. 비 오듯 흐르는 땀 속에 그날 느낀 뿌듯함 은이루말할수없었습니다.태어나처음으 로오로지아부지만을위해제손으로땀을 흘렸으니까요.조금있으면또설입니다. 겨울이라 벌초할 풀도 없겠지만, 그래 도 아부지 산소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습 니다.제게남은효도라곤그묘앞에서는 일밖에 없으니까요. 아부지라고랄~?이제 저도진짜아부지가되어버렸당께요. 부모님떠나보낸뒤,남는것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孤舟解纜午天晴(고주해람오천청) 조각배띄운오후하늘도쾌청하고 散髮秋江病骨淸(산발추강병골청) 가을 강 바람 쐬니 병든 몸 상쾌하네 歷歷楓松遙辨色(역력풍송요변색) 단풍과솔은멀리서도빛깔또렷하고 依依巖 舊聞名(의의암서구문명) 일렁이는바위그림자듣던대로황홀하네 詩緣腹藁篇難定(시연복고편난정) 시상이솟구쳐글로다듬기어려운데 睡被鳴橈夢易驚(수피명요몽이경) 노젓는소리에졸다가도쉽게놀라깨네 쳰 枕所過渾漫興(의침소과혼만흥) 뱃전에기대풍광보니몹시도흥겨운데 出雲歸鳥最關情(출운귀조최관정) 구름너머돌아가는새가장마음끌리네 -신유한(申維翰,1681-1752),븮청천집(靑泉集)븯 븮오후에징파강에배를띄우며[午發澄波江]븯 이 시는 신유한(申維翰)이 1739년 59세의 나이로 연천 현감으로 부임하여 지은 작품이다. 환갑이 다 되도록 말단 관직과 지방 수령 자리를 전전하다 이 제 또 척박한 땅의 수령이 되었으니 달가운 벼슬살 이는 아니었을 것이다.그런 울울한 심사를 달랠 수 있는안식처가바로징파강이었다.징파강은임진강 의 지류로 한탄강과 합류하기 이전에 북쪽에서 흐 르는 강이다.안협,토산,삭령,연천을 거쳐 마전 남 쪽에서 임진강 본류와 합류하는데, 삭령의 우화정 (羽化亭),연천의웅연(熊淵)과징파나루가경치가 좋았다. 신유한은 2월에 부임하여 6월엔 웅연을 유 람하였고한달뒤징파나루를유람하며이시를지 었다.음력 7월 보름 선유(船遊)의 경험을 노래하였 으니딱요즘과같은절기에지은작품이다. 하늘도쾌청하고바람도상쾌하니뼛속까지시원하다. 축축늘어지는여름을인고하여가을맞이유람에나섰는 데날씨까지도와주니이보다흡족할순없다.가을강바람 의청량함과승경을유람하는흥분이생생하게전해진다. 역력(歷歷)은 또렷한 모양이고 의의(依依)는 일 렁이는 모양이다.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나무에 눈이 정화되고 일렁이는 물결에 투영된 바위 그림 자는 절벽의 풍광을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상반된 이미지가 혼연히 하나가 되어 서로의 바탕이 된다. 멋진 풍광에 절로 창작욕이 샘솟지만 이내 글로 담 기 어려움을 깨닫고 창작을 포기한다. 그저 한가함 을 즐길 따름인데 노 젓는 소리에 설핏 잠이 들다가 도또그소리때문에단꿈에서깨어난다. 모든 풍광이 아름답지만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나 는 새에 더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광활한 대자연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툭 트였기 때문이다.시선이 하 늘로 향하면서 후련한 심정이 극대화된다. 56자의 짧은 시이지만 마치 요즘의 여행 블로그를 보는 것 처럼매장면이선명하고생생하다. 신유한이 가을 강에 배를 띄운 것은 소식(蘇軾)의 유람을본뜬것이다.소식은황주(黃州)유배시절,임 술년7월기망(旣望)과10월보름에장강(長江)의적 벽(赤壁)을유람하고이를불후의명작븮전적벽부(前 赤壁賦)븯와 븮후적벽부(後赤壁賦)븯로 남겼다. 그 영향 으로우리나라에서도7월16일과10월15일에뱃놀이 를즐기는문화가유행하였는데,전국각지에서배를 띄우고술을마시며시를읊었다.임진강은그중에서 도인기가많았던장소로그배경에는적벽이있었다. 임진강유역은주상절리가발달하여강변을따라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이 참으로 장관이다. 석양을 받은 절벽이 붉은 빛을 발해서인지, 절벽의 돌단풍 이 가을에 붉게 물들어서인지 임진강 주상절리 절 벽은 적벽으로 불렸다. 소동파가 장강 적벽에서 조 조의적벽을떠올렸듯이조선의풍류객들은임진강 절벽에서소동파의적벽을떠올렸다.신유한도연천 현감으로있으면서적벽풍광에꽤나매료되었다. ‘해람(解纜)’은 닻줄을 푼다는 말로 출항을 의미 하며 ‘계람(繫纜)’은 이 반대말로 정박을 의미한다. 모든 여행은 결국 해람과 계람 사이의 항해이다.일 상의 닻줄을 풀고 우연의 세계와 조우하다 다시 일 상에 닻줄을 내려 필연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 여 행의본질이아닐까.시에서는‘해람’의공간만을다 루고있지만그‘등선(登船)’이‘등선(登仙)’의경험 으로 치환될 수 있는 이유는, 땅에 발을 내딛는 ‘계 람’의일상이변함없이기다리고있기때문이다. 삶의여정도해람과계람의무한한반복이아닐까생 각해본다.이상향의바다를향해닻줄을풀었다가현실 의 땅에 정박하여 지난 항로를 점검하는 일이 우리의 삶과매우닮았다는생각이든다.오늘나의배는어느 바다를항해하고있는지,또는어느포구에정박하였는 지 돌아보게 된다.가을이 성큼 찾아왔다.시원한 바람 과밝은달이모두의항해를아낌없이응원할것이다. /글쓴이김효동한국고전번역원연구원 [본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메일링서비스를 통해받은것입니다.] -한시감상- 해람(解纜)과계람(繫纜)사이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5)352-7224 FAX(055)352-7225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50429 경남밀양시내일중앙길11밀성회관1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淸秋佳節 朴聖根(박성근) 馬育天高夜氣淸(마육천고야기청)하늘높고말이살찌니밤기운이맑구나 佳音업쐼 切中生(가음실솔체중생)귀뚜라미아름다운소리는뜰가운데나오네 月明水淺看魚影(월명수천간어영)밝은달얕은물에고기그림자보이고 露冷山空閒雁聲(로냉산공한안성)찬이슬빈산에기러기소리들리네 風角澄宵琴易響(풍각증소금이향)바람피리맑은밤에거문고가쉽게울리고 德奉奇景畵難成(덕봉미경화난성)덕유산봉우리괴이한경이그림을그리기어렵네 登豊稻黍時頭俯(등풍도서시두부)풍년든벼와기장머리를구부릴때 流汗農夫大有迎(유한농부대유영)땀흘린농부는풍년을맞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