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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월31일 금요일 11 (제217호) 독자마당 얼마전븮하얼빈븯이란영화를봤다.생각 만큼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조금 지루 하기도 했다. 영상미나 배우연기는 뛰어 났다.영화에서가장기억에남는말은븮이 토오히로부미븯(이하이토)가한말이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 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 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말이지.> 븮안중근븯을 이야기하려면 븮이토븯를 빼놓 을수는없다.사실이두사람은서로죽고 죽인관계이지만생각이비슷한점도있었 다.그리고 이 두 사람은 현재 각자 나라에 서는최고영웅으로칭송받고있는점도같 다.안중근이이토를쏜이유는일제가조선 을먹으려는것을막기위해서였지만다른 이유도있었다.안중근과이토의신념이달 랐던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안중근과 이토는똑같이븮동양평화론븯을주장했다. 하얼빈이라는 소설을 쓴 김훈작가는 아 래처럼 말했다. <븮하얼빈븯은 동양평화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안중근을 비롯한 인 물들이선택한길에대해옳고그름을가리 지않는다.다만스스로의신념을지키려한 책 속 많은 이들의 모습은 각 자가 만들어낸 명장면 속에서 순수하게 빛나고 있다.> 븮동 양평화론!븯븮대동아공영론븯이라고도한다. 이토로 상징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동 양평화론,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청년기 의 순수한 열정의 동양평화론,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안중근은이또를사 살했을까? 그 차이 를 알아보자. 뜻은 같다. 밀려오는 서 양세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한븡중븡일 세 나라가 서 로 뭉쳐야 된다는 것 이다.하지만 겉은 같 은말같지만속의미는완전히다르다. 안중근의 븮동양평화론븯은 [한중일 각 국 가가열등하거나우월하지않고각자특색 을갖고각기역사적으로의존및투쟁을반 복하면서성장해왔다.그러다어느한쪽이 한쪽을지배하는형상을가졌을때는한중 일균형이무너져이상한방향으로흘러갔 다.또한한쪽힘이증대되면다른쪽은연 합해한쪽을견재하는그런저울같은관계 였다.한중일 이 세 나라가 힘의 균형을 가 지기위해서는한중일누구도외세에영향 받지않고자존할수있게힘의균형을가지 면서평화를추구해야한다.]는것이었다. 안중근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영세중 립국도 주장했다.이에 반해 일본 븮이토븯의 대동아공영론(동양평화론)은3국중가장 먼저근대화되어문화적우월감에빠져완 전일본입장에서만부르짖은것이었다. [한중일은오랜세월간서로각축전으로 얼룩져왔다.그리고이3국중항상패권국 인 중국이 3국을 주도 해왔다.그런데 이제 중국이 그 힘을 잃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 위치를누군가대신해야한다.그리고패권 국이 서양 세력에 맞서 3국 을 평화로 이끌 어야 한다.중국은 이제 한 물 갔으니 일본 이이3국을주도해나가겠다]는말이었다. 이토가이븮대동아공영론븯을주장할때 는 븮청일전쟁븯과 븮러일전쟁븯 두 전쟁에서 일본의 완벽한 승리 로 일본 기세가 욱일 승천하고 조선을 거의 손아귀에 넣고 있 을때였다.조선을 먹고 중국도 곧 먹겠다 는일본수작이 눈에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때 일본에서 이토는 온건파 였다. 그래도 무조건 침략이 아닌 말이라 도그럴듯하게치장하고있었다. 이토는당시실세총리로서이런일본군 부군국주의세력을어느정도막아내고있 었다.이토는군사적힘만가지고는조선과 중국을영원한일본속국으로만들수없다 고 보고, 븮대동아공영론븯이라는 그럴싸한 더큰명분을내세우고있었던것이다.사실 이토생각이일본내강경파군국주의자들 보다훨씬더치밀하고무서운계획이었다. 안중근은그런이토속셈을간파했던것 이다.그리고이토암살을결심하고결행했 다.하얼빈영화에서도상세히나오지만당 시이토암살은거의불가능에가까웠다. 이토가 중국 하얼빈에 온다는 것은 확 실했지만 거기서 내릴지는 확실하지 않 았다. 그리고 안중근은 이토 얼굴도 몰랐 다.나도권총을 안쏴봐서모르지만 권총 전문가들은 5미터 앞에서도 움직이는 물 체를맞추기힘들다고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은 10미터 이상 떨 어진거리에서가장앞에가는사람이이토 라고짐작하고정확하게3발을쏘아맞춘다. 또혹이나그가이토가아닐까봐옆수행원 에게도3발을쏘아정확히맞추었다.6발중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안중근은 엄청 난 역사적 사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침착 했다.그리고뛰어난명사수이기도했다. 실제인지는잘모르겠지만이토가죽기 직전에 자기를 쏜 사람이 누구였냐고 물 어서 조선인이라고 하자 뷺빠가야로(바보 같은자식!)뷻 라고 했다고 한다. 이토는 자 기가 제거되면 일본 군부강경파가 곧 바 로무력으로조선을합방하리라고보았기 때문이다.그리고그것은사실이되었다. 안중근이 1909년 음력 9월 13일 오전 9 시( 양력 10월26일 )에 이토를 사살하고 나서 채 1년도 안된 1910년 8월에 한일합 방이 조인되어 효력이 발생 되고 만다.그 러나 안중근의 이토 암살로 한일합방은 조금 앞 당겨졌을지는 모르지만 이토가 살아 있었으면 이토는 좀 더 교묘한 방법 으로조선을옥죄여갔을것이다. 한일합방은 시간이나 방법이 문제였지 일본에게는 기정사실화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토는 븮을사늑약븯과 븮정미7조약븯으 로 조선의 통치권을 완벽하게 가져 간 상 태였다. 안중근의 의거가 없었다면 조선 멸망은더초라하고비참했을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치욕을 안중근으 로인해조금이라도자존심이라도지킬수 있었다.안중근은거사성공이후행적은더 빛났다.재판장에서당당하게그는암살자 가아니라조선의장군으로서일본과전쟁 중적군장수를사살했다고주장했다. 안중근은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 심문에 서도한국의용병참모중장,나이31세로자 신을 밝혔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 자이토가대한의독립주권을침탈한원흉 이며 동양평화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 사령관 자격으로 총살 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자격으로사살한것이아님을밝혔다. 그리고 안중근은 자신을 일반 살인피 고가 아닌 전쟁포로로 대우하기를 주장 하였다.재판과정에서의정연하고당당한 논술과 태도에 일본인 재판장과 검찰관 들도 탄복하였다.관선변호인 븮미즈노븯는 그의답변태도에감복해“그범죄동기는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를 죽 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 국에 대한 적성(赤誠)에서 나온 것은 의 심할여지가없다.”고변론하였다. 언도 공판은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에 개정되었고 재판장 븮마나베븯는 사 형을 언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이 날을 븮발렌타이데이븯 라고만 알고있다.한심스러운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김훈 작가도 검찰신문 과 재판조서 기록에 감동하여 븮하얼빈븯이 라는 소설을 썼다고 했다. 안중근은 1910 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 형장에 서순국하였다. 이처럼 안중근 일생은 동양평화와 나 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뭉쳐 있었다. 비록 안중근의 의로운 행동이 일본에 의해 테 러리스트 암살자 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당했지만 일본인들도 인정할 만큼 안중 근은 총칼을 앞세운 일제 폭력적인 침략 에 항거했다. 대한제국의 장군으로서 홀 로일본과전쟁을치루었던것이다. 그런데 븮하얼빈븯 영화에서는 이토를 암 살하기까지과정이나안중근의인간적고 뇌는 자세히 다루지만 암살 장면이나 재 판과정 옥살이 하는 장면은 너무 짧았고 순간적으로지나가서아쉬웠다.안중근은 이토를암살함으로써우리민족에게영원 한 자부심으로 남겨져 있다.이 말은 말하 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후손들은 너무나 비참한 생활을 했다. 안중근에게 두 아들 이있었는데한아들은일곱살때일제순 경이 준 독이든 과자를 먹고 죽는다.남은 한 아들은 생활고를 못 이기고 나중 친일 적행동을하고해방후비난받자말했다. 뷺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 의 재앙이었습니다. 나는 나라의 재앙이 었지만 가족의 영웅이었습니다.뷻 참으로 가슴아픈말이다. 븮나라의 영웅이 가족의 재앙븯이 되어야 하는 아픈 시대를 안중근 가족은 살았던 것이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바라 지만요즘시국을보면그렇지못하는것 같아안타까울뿐이다. 븮안중근븯과븮이토히로부미븯 (븮하얼빈븯영화를보고)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박 석 무 다산연구소이사장 마침내대통령이망하는지경에이르렀습니다.해방80 년을 맞는 새해가밝았지만 즐겁고 기쁜이야기는하지 못하고망해가는통치자의비극적인현실을이야기할수 밖에없으니마음이무거울뿐입니다.제발이런지경에 는 이르러서는안된다고정치를잘하라고거듭거듭 다 산의통치술을풀어서이야기했지만거들떠보지도않더 니끝내이지경에이르고말았으니할말이없습니다.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 습니다.‘바이든’‘날리면’의그위대한거짓말,입에침 도마르지않고눈한쪽깜빡거리지도않으면서참으 로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이다아는범죄자장모에대해남에게십원짜리하나 해끼친적이없다고,자신의아내는주가조작의무거 운범죄자로서거액의이익을챙긴것으로다드러나 고있는데손해만보고손을뗐다고엉뚱한거짓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최근에 와서는 온 국민이 대통령 의육성을직접듣게되어,자신은누구에게공천을주 라고말한적이없다는거짓말의민낯을보여줍니다.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선거관리위 원회를 점령하고 국회의원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고 ‘수거’하라는 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데도,아니 그렇게 내란을 실 행했는데도 그저 ‘경고’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어처구니 없는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 고 있습니다. 이렇게 뻔뻔하 고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세 상 천지 어디에 또 있다는말 입니까. ‘하늘을 거역하면 망한다’,‘민심을 두려워하지 않 으면 권력은 망한다’라는 다산의 말씀을 계속 전해 주었고, 심지어는 ‘온갖 망동으로 나라를 망치는 정 권’이라는 글에서 극언을 하면서 대전환의 정치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 산의말씀을거역한정권의말로가어떻게되는지를 오늘의내란정국이보여주고있습니다. 국회에서탄핵이가결되던지난14일하루동안의국 회앞여의도광장에분노한국민들의함성을생각해봅 시다.그런국민을두려워하지않고제멋대로독재정치 를하고서야살아남을정권이어떤세상에또있을수있 을까요.계엄령이선포되던12월3일야밤을기억해야만 합니다.가당치않은계엄령이선포되자모든두려움을 떨치고그춥고깊은야밤에국회에모여들어계엄군을 막아내던그순수한국민들의마음을왜생각하지않았 을까요.그분노한국민들의함성과외침을어떤힘으로 막을수있다는것입니까.계엄군의탱크앞에주저앉아 가로막던착한우리국민들의힘을누가막을수있을까 요.주자(朱子)는 말했습니다. 혈기에 분노하는 입이야 자제해야하지만,의리에분노하는입은아무도막을수 없고막아서도안된다고했습니다.이런혹독한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 나아가 정의와 탄핵을 외치는국민들을어느누가막을수있습니까. 다시 다산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목민심 서』「교민(敎民)」조항에서 말했습니다.“가르쳐 주 지않고형법을내리는것을일러망민(罔民)이라고 한다.비록흉악한불효자식일지라도일단가르치고 나서 고치지 않으면 그때는 죽인다(不悛 乃殺)” 바 로 그렇습니다.나는 세 개의 일간지와 ‘풀어쓰는 다 산이야기’ 지면을 통해 참으로 많은 다산의 말씀을 정권에게전해주었습니다.단한마디도들어주지않 은 정권, 끝내는 사형과 무기만이 있는 내란죄를 저 질렀으니,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역적 죄인 을어떻게용서할수있는가요. 다산의 말씀을 외면한 통치자 ‘지방 소멸'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농어촌에서 는취학대상아동이3~4명에불과하고,전교생이1명 인 학교도 있다. 학생들이 급감하다 보니 분교형태 로 운영되는 학교도 꽤 많이 생겼다.그러나 그 분교 마저 몇 년 지나면 폐교된다. 입학생이 없기 때문이 다.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염강초,공진중,성 수공고 등 7개교나 폐교되었고 학생 수를 채우지 못 해건물이비어있는학교도부지기수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폐교된 학교는무려3,955개교에달한다.많이폐교된순으로 보면전남844,경북731,경남586,강원482순이고,부 산,대구,인천에서도50여개씩이나되어저출산현상 이얼마나심각한지를여실히보여주고있다.비수도 권지역은 저출산에더하여젊은이싹쓸이전출이라 는이중고로인구가더극심히감소하기때문이다. 학생들이좀있어야공동체생활을지도하고학생들 끼리활동다운활동을하고경쟁이라도해보는데학생 이너무없다보니수업하는데도제약이많다.학교에가 도, 학교를 마쳐도 친구가 거의 없으니까 사회성 부족 현상도심각하다.또1·2학년,3·4학년,5·6학년을묶어서 수업을진행하다보니학생들은전체40분수업시간중 20분만자기학년에맞는학습을하게되어제대로된교 육이이뤄지지못하고있다.그러나이러한어려운학교 환경속에서도희망적인조짐 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교육 유학‘이다. 여건만 허용된다 면도시보다는시골에서아이 를 키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 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학교에서는 근처에 깊지 않은 맑은 개울과 산림 등 있 는그대로의자연이있어정신이나신체건강모두가도 시에서보다는훨씬더좋아질것이라는것이다.문제는 학업성적이다. 도시학교 못지않게 학업성취가 이뤄진 다는보장이교육유학의조건이되고있다. 80-90년대에일부郡지역에서시장군수들이일류학 교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적이 많았다. 일류학교 만 드는비결은일류선생님을초빙해가르치도록하겠다 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잘 주입시키고 잘 암기시키면학업성취도가올라가기에일류학교가된 다는것이었다.과거에는그러한주입식암기식교육이 일응타당한측면도있었지만지금은더이상아니다. 학생들의 학습분야가 敎科학습과 非敎科 체험활 동으로확대되었고,교과학습도당해교과목과다른 관련 교과목과의 연계학습이 강화되는 등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학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구촌이 하나의 사회처럼 되어가면서 세계시야가 필요해졌고,사회가다원화되고인공지능(AI)과로 봇이 발전하면서어릴때부터장래진로를놓고다양 한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다. 학생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학습해야 시대에 맞 는 효과적 학습이 될까? 그러한 학습방법을 도입한 학교라면교육유학생이물밀듯이몰려올것이다. 지금세계적으로가장시대에맞게교육하는학교 가미국샌프란시스코에있는미네르바대학이다.하 바드대학보다도입학하기가더어려운대학으로소 문나 있다.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미네르바대학 은교수가학생들을가르치지(instruct)않고학생들 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도와주기(facilitate)만 한다. 학생들은다른학생들이 발표(presentation)한 것을 듣고 또 자기도 발표하면서 서로 비교하고 판단한 다. 그래서 미네르바대학에는 모여서 강의 듣는 교 실이 없고 수업은 노트북으로 화상으로 한다. 매 수 업을 이렇게 하니까 학생들은 한시도 게으를 수가 없다. 전 세계 관련 웹사이트를 검색해서 자기만의 발표자료를만들어야하기때문이다. 우리한국에서도이러한교육방법이저작권등록되 었다.미네르바대학학습방법과 원리가 같다고하여’ 미네르바 스쿨링‘(minerva schooling)이라고 이름지 어졌다. 참여식 학습을 전제로 스마트폰을 학습도구 로사용하는스마트학습과현장중심의창의적체험활 동,그리고중요한사회적직책에대한역할연기(rolep laying)등으로구성되어있다.적극도입해볼만하다. 농촌학교가미네르바스쿨링무장하면교육유학활성화 된다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종친회의 설립목적은 종친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대동소이 하다고 생 각한다. 첫째는 숭조사상 고취 둘째는 종친 간 친목도모 셋째는 후손의 번영과 발전 넷 째는 선조의 문화유산 보존 다섯째는 사회 공헌참여등으로요약될수있다.우리충헌 공파는박혁거세왕을시조하고,밀성대군을 관조로 충헌공을 중시조로 한 종친회이다. 충한공파종친회는척(陟)의후손으로밀양 시하남읍귀명리에선영과단비,재실,경모 재(敬慕齋)를관리하고있으며,매년음력1 0월 3일을 제향일로 삼고 있다.그리고 종친 회산하에는6개소파로구성되어있다.그래 서 제향일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마치 연어 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오듯이 종친들도 함 께모여그동안의안부를묻고,각소파의종 중들의 소식을 전하는 등 담소를 나누는 모 습에서혈육의정을진하게느끼게된다. 나는 충헌공파 대종회 회장으로 취임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지만 막상 퇴임을 앞두고 생각해 보 니,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동안의 부끄러운 시간들을 뒤돌아보게 된다.이제 충헌공파 대종회에서 함께했던 지난 3년의 임기를 마치며, 희로애락이라 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체험하는 시간들이었다는생각이든다. 내가 일찍이 종친회 회장직을 맞게 되었 을때,평소에존경하고가르침을받았던학 교선배님을찾아갔었는데,근심어린눈으 로바라보시면서하시는말씀이“나도국회 의원,장관도해보았지만종친회장할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와 서돌이켜보니무슨뜻인지깊이다가온다. 그동안주마등처럼스쳐가는일들중에특 히종친회임원회의를할때면종원들께서건 의사항을 말할 때, 종친회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눈높이로 의견을 관철 하려고 강력히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회장으로서종원들의중지를모으는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때로는 몇몇 종원들의경험을바탕으로언성을높이는경 우도 있고,반면에 문중을 오래 출입하신 분 들 중에는 좋은 전통을 제시해주기도 하시 고,또잘모르는부분이나잘못된부분을고 쳐주시는 좋은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일 힘들었던것은소위문중의어른이라고하신 분들 중에는 모든 일에 관여하여 상왕 노릇을 하려는분도있어서젊은이들로부터눈총을 받는경우도있었다.그리하여대종회의본질 (本質)에서벗어나는행동을할때면회장으 로서무척애를먹는경우도있었다. 그래서이제와돌이켜보면회장의역할중 에 그 때 그 때 상황 에 맞게 종원들의 중 지를모으고,판단하 는 리더십을 갖춘 지 도자의 자질과 덕목 이 얼마나 중요한지 를 생각하게 된다, 종친회 회장직은 명 예직이다.그조직을대표하고,조직의모든일 을통할(統轄)하며,회의를소집하고의장(議 長)이된다.그런데일부회장들중에는회장의 책임과의무보다는명예와권리만을주장하며, 오히려회장직을개인의이익을채우기위해탐 하는경우도있어서종종종친회에갈등과분열 을일으키는장본이기되기도한다.그동안나 는회장으로서이를거울삶아회장으로재직하 고있는한늘긴장하며,중요한의사결정을할 때면 개인의 생각보다는 원로들과 종원들의 의견을종합하여결정하려고애써왔다. 유교경전중의하나인<논어>에서공자께서 는 고집불통(固執不通)을 제일 싫어하셨다고 말하고있다.그래서앞으로도종친회는그누가 회장직을수행하더라도먼저조상의얼을높이 고,이를 본받아 계승 발전하여 본인과 사회에 이바지하고자하는마음을가져야한다.그리고 친족간에화합하고소통하는것이중요하다는 것을알아야한다.만약개인의사사로운욕심을 채우기위해서종친회를이용하려고한다면이 는조상들에게면목이없는일이고,또후손들에 게도부끄러운일임을명심해야할것이다.종종 많은경험과지식이풍부한원로들이고집불통 의의견을주장하여본질을잃어버리는일이있 어서는안될것이다.이는자칫변화와개혁을 온당치않게생각하는경향이있기때문이다. 현대는빠른속도로변화하고있다.현재 AI시대는기본이고로봇시대를넘어양자 물리학,후성유전학 등이 일상생활에 접목 되어우리의삶을크게변화시키고있는시 대에우리는살아가고있다. 따라서 너무 큰 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임자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인의예지 (仁義禮智)본성을바탕으로전통문화를계 승,발전시키고 시대의 낡은 유물들은 과감 하게 버리며,미래 예측을 대비하는 선구적 인대종회를이끄는회장이되기를바란다. 끝으로 <논어> 학이편 제9장에 나오는 신종추원(愼終追遠)으로마무리하고자한 다. 이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께서 조상의 추모가얼마나중요한지,조상의제사를잘 받들면 후세들에게 덕이 후하게 될 것이라 고하여바로종친회의정체성을말하고있 다. 이제 충헌공파 종친회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미래를 선도해 나가 는멋진종친회가되었으면좋겠다.밀성대 군 충헌공파여! 영원하라. (본 원고는 지난 해말보내온원고입니다.) 우리민족의정체성을지켜나가는종친회 박 각 준 (밀성박씨충헌공파대종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