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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를 포위하고 내기마을에서 고촌.회덕.운봉면 주촌, 다시 주천의 노치마을로 점령해 들어오면서 마을을 다 불태워버리고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주민들을 죽였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전부 인민군 패잔병으로 생각하라"며 "어제 저녁에 낳은 아이들까지 다 죽여라"는 명령에 지리산 아래 태어나 농사짓고 산 죄 밖에 없던 민간인 37명을 학살했습니다. 비무장 민간인을 덕치마을 정자 나무아래 모아놓고 현장에서 즉결처분했습니다. 개머리판으로 때려서 안 죽으니 대검으로 목을 잘라 죽이고 만삭인 임산부의 하복부에 연속 사격을 가해 태중의 아이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참혹한 살육의 그날이 반세기를 훌쩍 지나도록 진상을 밝히고 책임지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습니다. 희생자의 넋을 한 자리에 모시지도 못했던 침묵의 나날이었습니다. 진상을 밝히려는 그 자체가 범죄시 되던 암흑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야 성산 지리산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초석을 여기에 놓습니다. 통일된 조국에서 지난날의 회한을 풀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후손들에게 경계하기 위해 이 돌에 새깁니다. 부다 후배 후손들을 꾸짖어 살펴주시고 영원한 평안과 영면을 누리소서.
한병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