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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마을
성명: 류기섭(柳基燮 1905.1.2~1936.5.21)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중정2리(당리) 운동계열: 국내항일
독립운동가 류기섭님은 고향의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조선일보 부여지국의 기자와 부여청년회 문예부장을 지냈다. 이후 대왕의숙(大王義塾)을 개설하여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산술을 교육하는 한편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이즈음 점차 사회주의 사항에 경도된 그는 서진 강성구 등의 동지와 비밀결사 화성당(火星黨)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이호철이 경영하는 중앙일보 부여지국의 총무 겸 기자로 근무하였다. 1931년 봄 노명(明)우, 이호철, 장창선, 오기영 등과 함께 부여군 홍산면에서 사회주의 사항을 보급하고 항일독립운동을 펼 것을 목적으로 농민조합의 조직에 착수하였으나 일경의 취체가 심하여 중단하였다. 이들은 이후 전영철, 강도형 등의 동기를 규합하여 마정리, 합송리, 조현리, 장하리, 중정리 등의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고 농촌의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산술 등의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토론회를 개최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들은 또한 1933년 7월 부락청년들을 규합하여 부여농민조합연합회의 지부로서 대야구락부를 위장, 조직하고 항일농민운동에 힘쓰던 중 동년 8월 일경에 피체되었다. (금강문인.농민회 사건) 그는 피체된 지 2년 만인 1935년 11월 2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36년 5월 21일 공주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10. 4 부여군 부여읍 중정2리 민선7기 부여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