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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대장 신강 김치홍 장군(서기1880 ~ 서기1910)
선생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동필(東弼)로 1880년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10월 심남일(沈南一) 의병진에 가담하여 기군장에 선임되어 약 6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영광(靈光) 능주(綾州) 등지를 무대로 의병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1909년 1월에는 박민홍(朴民洪) 의병부대의 제1초십장(第一哨什長)에 임명되어 총기 15정의 열악한 무기로 부하 30여 명을 인솔하여 나주(羅州)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4월에는 박사화 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되어 총기 12정으로 부하 26명을 거느리고 영암 일대에서 역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영산포(榮山浦)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어 1910년 6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으며 같은 해 7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영암군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영암군에서는 이러한 뜻을 본받고 기리고자 2007년에는 사당 및 내삼문을 건립하였고 2009년에는 보훈청의 국가보훈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비 150, 도비 100, 군비 350, 자부담 10 등 총 6억천만원을 투자하여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2010년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