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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태(1909.11.29~1944.5.26) 무주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규슈제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문예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를 "조선일보"에 발표, 잇달아 "예술의 순수성" "나의 비평태도" 등을 발표하여 순수문학을 적극 옹호하고 카프의 공리주의 문학을 배격하였다. 이러한 그의 문학관은 많은 문예시평에 그대로 나타났고, 유진오와 김동리의 ‘세대론’이 벌어졌을 때는 "순수시비"를 발표하여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김동리를 옹호하였다.
"정지용론" "시인 김상용론" 등을 통해 예술파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한편, 이태준, 김동리 ·최명익의 작품에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등 순수 문학정신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평론활동을 폈다.
그의 부인은 시인 박용철의 동생이었다. 1936년에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구인회에 평론가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했다. 1934년부터 1940년초까지 활발하게 비평을 발표하다가 그해 4월부터 절필했다. 1942년 폐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교직 생활을 접었고, 1944년 봄 3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유저(遺著)로 미망인이 낸 "김환태전집"(1972)이 있다.
출처 :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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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징의 화원에 노는 한마리 나비
눌인 길 환태
나는 상징의 화원에 노는 한마리 나비 ㄹ 자 한다
아욜로의 아이들이 가까스로 가꾸어
형형색색으로
곱게 피어논
꽃송이를 찾아
그 미(미)에
홀빡 취하면 족하다
그러나 그때의 꿈이
한껏 아름다웠을때에는
사라지기 쉬운 그 꿈을
말의 실마리로 엮어놓으려는
안타까운 욕망을 가진다.
그리하여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소위 나의 비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