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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시 남면 경신리 산 72 의병대장 의암 정용대 선생 묘를 찾았다.
구 한국군의 특무정교(特務正校)이던 정용대는 스스로 창의좌군장으로 칭한 뒤,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풍덕, 교하, 통진(등에서 왜적과 접전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또 이은찬 의진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1908년 2월 27일 양주군 석적면에서, 3월 2일에는 회암면에서 각각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이은찬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전세가 약화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윤인순 의진과 연합전선을 모색하는 한편, 같은 해 6월 8일 부평군 내면을 기습하였지만, 일본군의 반격으로 의병 4명이 생포되는 등 다시 패퇴함으로써 큰 타격을 받았다.
정용대 의진은 한말 의병사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자금 모금으로도 유명한데, 이종근, 신관수, 박만안, 백영현, 김현기, 이학선 등의 부하들로 하여금 각지에서 군자금을 조달하게 함으로써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후 계속 의병 투쟁을 하다가 1909년 일본 토벌대에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1910년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