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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는 평소에 동학사와 화양동에 오래 머물며 동학사 단종 전각이 무너지자 수리한 후 누락 제공 위패를 추배하고서 임금과 함께 제사를 지냈고, [동학지]를 편찬했다. 그리고 경찰이 화양동 만동묘향사를 금지하자, 동지들과 함께 항의하다 감옥에 구금된 바 있었다. 이처럼 선생은 충. 역의 구분에 엄중하였다. 선생의 휘는 주헌(柱憲), 자는 윤장(允章), 호는 삼호재(三乎齋)이다. 여산 송(宋)은 추밀 부사 휘 유익(惟翊)을 시조로, 정열공 휘 송례(松禮)와 문수공 휘 염(琰)이 대를 이어 고려조에서 현달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충간공 휘 간(侃)이 단종의 명을 받아 순무사 임무 수행 중 전라도 흥양에서 세조의 찬탈 소식을 듣고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의로 직을 버리고 고향 여산에 돌아가 두문 불출 하다가 단종이 유배 된 영월로 가서 순행 결과를 복명하였다. 高 학촌 휘 수구(壽龜) 曾 휘 영환(榮煥)、祖 수당 휘 진성(鎮誠), 考 학계 휘 윤호(潤浩)는 모두 문학과 덕행을 겸비하였다. 고흥 유응호(柳膺浩) 는 외조이며, 죽산 안덕수(安德洙)는 장인이다. 선생은 1872년 태어나, 1950년 9월 10일 향년 79세로 서거하셨다. 당시 사회 혼란으로 서울 망우리에 임시 장례한 후, 고향 학림리 뒷산으로 이장하였다가, 2017년 11월 4일 배 유인 죽산안씨 와 함께 대전국립 묘지에 안장하였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어 아들은 필섭,상섭,양섭,인섭이고, 경주 이용섭, 부안 김춘길은 사위이다. 두번째 부인 제주고씨가 2녀를 낳아 청주 한동희, 한양 조경희가 사위이다. 손자는 기일, 기남, 기찬, 기억이며 증손자는 광현,문현이다. 아! 선생은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여 공의와 사리에 분명하고 충성과 반역의 구분에 엄격하여, 살아 온 일생이 어느 하나도 절의를 숭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어찌 전수없이 그러하였겠는가? 그의 조상중에 충간공이 있었고, 스승으로 입재,연재,심석이 있었고, 면암,간재등 여러 문하를 찾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