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page

112 • 가평의 얼과 인맥 3. 4 흐 . T -=J 가. 淸江(청강) 李齊톰(이제신) (국사대사전, 일중당, 1979년 4월 15일 발행 1212쪽) 1536년(중종 31)-1없년(선조16), 조선조 선조 때의 문신, 자는 夢應(몽응), 호는 淸江(청강), 본관은 全義(전의), 兵使(병사)文誠(문성)의 아들, 7세에 글을 잘 지어 趙南펼(조남명)의 칭찬을 받았고, 17세에 趙몹(조욱)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1또8년(명종 13)司馬試(사마시)를 거쳐 1564년 문과에 급제, 형 · 공 · 호조의 正郞(정랑)으로 , 핀-서 용詳常(오상상)의 신임을 받았으며, 종 사관 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成均司藝(성균사예) . 禮햄(예조)正郞(정랑) . 持平(지평) . 司課(사간)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품州(진주)收使(목사)로 잘 다스렸으나 사임하고 고향에서 독서로 소일 하였다 그 후 다시 기용되어 江界(강계)府使(부사)가 되고 함경도 兵馬節度使(병마절도사)에 이 르렀으며 1583년(선조 16) 胡人(호인) 尼場介(니탕개)가 처들어와 慶源(경원)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함락되자 穩城(온성)府使(부사) 中핸(신립) . 富寧(부령)i1f使(부사) 張義賢(장의현)으로 하여 금 그를 쳐몰아내게 하고 진격하여 그의 소굴을 소탕하였다. 처음에 경원의 패전을 이유로 그를 미워하는 지들이 간언하여 의주의 憐山鎭(인산진)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듬해 李友直 (이우직)의 변론으로 벼슬이 복구되었다 저서 淸江集(청강집) 나. 三淵(삼연) 金昌옳(김창흡) (Daurn 백과사전에서 전재) 1653 (효종 4)-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지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 (三淵).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자이며 영의정 수항(壽1멜)의 셋째 아들이다 김창집과 김 창협의 동생 이기도 하다. 형 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징-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과거에 는 관심이 없었으나 부모의 명령으로 응시했고 1673년(현종 14) 진사시 에 합격한 뒤로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김석주(金錫뿜)의 추천으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爾)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고,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자 은거했다. <장 자〉 와 사마천의 〈사기〉 를 좋아하고 도(造)를 행하는 데 힘썼다. 1696년 서연관(훨鐘官) , 1721년 집의(執義)가 되었다. 이듬해 영조가 세제(世弟)로 책봉되자 세제시강원(世弟倚講 院)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신임사화로 외딴 섬에 유배된 형 창집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도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 등에 제헝: 되었다. 저서로 〈삼연집 > . <심양일기 灌陽 日 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