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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헌 삼호재 송주헌 선생 구국 기적비 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소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더니, 마침내 1910년 주권을 강탈하였다. 이에 우리 민족은 천추에 씻지 못할 국치민욕(國恥民辱)을 당하고 말았다. 가슴 속 솟구쳐 오르는 비분을 이기지 못한 송주헌 선생도 1919년 2월 고종황제 장례시 고종황제 장례식을 마친 날, 동지 12명과 청량리에서 순종 복위를 청하는 상소문(請亟復大位疏)을 올리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구금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선생은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 의지를 밝히며 독립 후 행정 조치 7조를 작성하다. 그 해 9월에야 석방되었다. 선생은 곧바로 동지를 규함, 고사연구회(古史硏究會)를 창설하여 조선 역사를 간행하려 하였다. 전국 유림 대표로 선정되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조선 독립은 천리와 인정에 합치된 것이라고 선언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조선 독립을 바라는 청원서를 보내기 위해 전국 유림 130인과 함께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