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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6년 3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를 털어 중국 연변(북간도)의 용정 (龍井)으로 가 서전서숙(瑞甸書塾) 을 열어 민족교육에 전념하고 있 었다. 이위종은 아버지인 대한제 국의 주러시아공사 이범진(李範 晉, 1852~1911)과 함께 상트 페 테르부르그에 거주하고 있었다. 긴 여정을 통해 함께 하게 된 특 사들은 외국어에 능통했던 이위 종의 도움으로 선언문 등을 정리 하여 헤이그로 향하였다. 그들이 도착한 6월 25일은 이미 만국평 화회의가 시작한지 여러 날이 지 난 다음이었다. 처음부터 일제 의 감시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 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참가국 대부분이 특사들의 회의장 입장 을 허락하지 않는 등 부정적이거 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난관에 봉착하였다. 특사들은 정당한 방 법으로 세계 국가에 호소하는 것 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 하고, 독자적으로 회의장 앞에서 호소문을 전달하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외쳤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일부 해외 언론의 호응은 얻었으나, 부당한 을사늑약을 되 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 불필요한 이준 열사의 사망 논란 특사들은 크게 낙담하면서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1907년 7월 14일에 이준 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화가 치 밀어 분사(憤死)한 것이다. 향년 48세. 이준의 사망으로 헤이그 특 사는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을사 늑약의 부당함은 만국에 알려지 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러일전쟁 을 승리로 이끌고 욱일승천하는 ➍  광무황제의 세 특사 이준·이상설·이위종(왼쪽부터) ➎  이준열사기념관의 이준열사 흉상과 내부 전시 ➍ 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