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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4년 6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령 선거를 위해 마탄사스를 심방하였다. 이 때 마탄 사스지방회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20여 명이 집단 으로 환영식에 참여하였다. 1941년 8월 14일 아바나에서 중국인 항공연합대 회와 항전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0여 개 단체 가 참가하여 중국의 항일전쟁을 위한 항공금을 대대 적으로 모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바나의 한인들 뿐 만 아니라,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의 한인 대표들도 항공연합대회에 참여하여 한‧중 양 민족의 항일의 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었다. 중국과 함께 항일투쟁 을 하는 한인들이 항공연합대회에 참가하여 경제적 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5원의 기부금을 전달하 였다. 한인들의 중국 행사 참여는 아바나의 3대 중국 신문에 형제자매의 의의를 더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태평양전쟁기, 아바나 한인들의 대일항전 활동 1941년 12월 7일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 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다. 쿠바정부는 한 인들을 일본인으로 취급하고 금족령을 내렸다. 이 에 아바나지방회에서는 북미 대한인국민회에 이같 은 사실을 보고하고, 재쿠바 중국공사에게 한인 보 호를 요청하였다. 쿠바 한인들이 적국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했다. 그래서 미주 한인의 최고기관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쿠바 와 멕시코 한인들에게 ‘한인 증명패’, 즉 ‘배지(휘장)’ 를 제작하여 보내주었다. 대한인국민회 상무부에서 1942년 1월 23일 증명패를 쿠바의 각 지방회에 보 냈다. 쿠바에서 사용된 증명패의 양식은 태극기와 쿠바 국기를 교차하고 그 아래에 스페인어로 ‘꼬레 아 빠라 빅또리아 꼰 꾸바(Corea para victoria con Cuba)’라고 썼다. 이 뜻은 “쿠바와 함께 한국의 승 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쿠바의 한인들은 쿠바 국과 함께 일제와 싸워 승리를 쟁취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재미한족연합위원 회에서는 쿠바 한인들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신 분 증명권’도 함께 제작하여 쿠바로 보냈다. ‘증명 권’ 앞면에는, 위쪽에 쿠바 국기와 한국 국기를 넣고, 그 아래 재미한족연합위원회(Comite De Koreanos Unidos En America)에서 쿠바 재류 한국인임을 증 명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뒷면에는 신분자의 사진과 서명을 썼다. 태평양전쟁기에 쿠바의 한인들은 재미한족연합위 원회서 만든 증명패를 가슴에 달고, 증명권을 소지 하고 다녔다. 그래서 한인들은 적국민이 아니라 우 방국민임을 알렸다. 쿠바의 모든 일본인들이 격리 수용을 당했지만, 한인들은 자유롭게 생활을 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아바나지방회에서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1942년 6월 15~17일까지 개최된 빅토리아연합회 에 참가하여 ①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할 것, ②재 쿠바 한인사회를 자유로 인정할 일, ③재쿠바 연합 빅토리아 데모크라시 총회는 한국기 달 것을 허락할 것 등을 제출하였다. 이 제의안은 빅토리아연합회에 서 통과가 결정되었고, 쿠바 대통령에게도 한인의 제의안을 보냈다. 일제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자 대 한민국임시정부는 대일선전(對日宣戰)을 대외적으 로 선포하였고, 국외 한인들도 모두 일본에 대한 선 전포고에 동참하였다. 쿠바정부도 전쟁 도발과 동시 에 1941년 12월 9일 독일·일본 등 추축국(樞軸國)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