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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4년 5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그런데 영국 런던에서 여비가 부족했다. 그래 서 그는 런던 시내의 중국인 왕홍성(王鴻盛, W. Chance)이 경영하던 식당 탐화루(探花樓, Cathay Restaurant)에서 부족한 여비를 빌려 미국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중국인으로부터 여비를 빌린 안창 호는 영국 글래스고항에서 1911년 8월 26일 배를 타고 9월 3일 미국 뉴욕항에 도착했다. 도산은 런던 탐화루 주인에게 빌린 돈을 1년이 지난 후에 갚아 주 었다. 왕홍성은 1912년 8월 1일 도산에게, “저는 당 신의 편지와 선물을 잘 받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런 사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매우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기쁘고, 매우 기 쁘다고 말해야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한국독립운동을 옹호하는 영국인의 한국친우회 맥켄지(Frederick A. McKenzie, 1869~1931) 만 큼 한국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외국인은 없다. 그는 1908년 『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 a)』 이라는 저서에서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된 뒤 저지 른 만행을 고발했다. 그리고 경기도와 강원도 산속 에서 싸우고 있는 의병들을 찾아가서 취재하고 그 실상을 그의 책에 생생하게 기술하였다. 그리고 맥 켄지는 3 · 1운동이 발발한 이후 1920년에 일제의 식 민통치와 3 · 1운동의 경과를 자세하게 서술한 『자유 를 위한 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 을 출간했다. 맥켄지의 이 책은 당시 영국사회에서 급속히 팽배하던 반일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국 의회 내에서 극동문제를 논의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책이 영국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당시, 맥 켄지는 런던에서 한국친우회라는 단체를 조직 했다. 영국의 한국친우회(League of Friendsof Korea)는 1920년 10월 26일 하원 의사당(House of Commons) 제6호 위원실에서 창립대회를 개 맥켄지의 저서 『Korea‘s Fight for Freedom(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표지와 속표지(지평 의병전투기념관 제공) 맥켄지가 사용한 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