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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이상설(李相卨)과 함께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약속하고, 1909년부터 밀산부(密山府)에서 독립운동기지 한흥동(韓興洞) 건설에 힘을 쏟았다. 1913년 밀산부에서 안동현(安東縣)으로 옮겨 독립운동기지 덕흥보(德興堡)를 건설하는 한편, 동삼성한인공교회(東三省韓人孔敎會)를 창립하여 유교의 진흥을 목표로 공교회운동을 펼쳤다. 이승희의 한흥동과 덕흥보 개척, 그리고 공교회운동은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이었다. 그 뒤 공교회운동에 전념하던 이승희는 1916년 2월 28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7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