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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감리교회와 3.10만세운동
면천감리교회는 1895년 유제는 한국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서울 정동교회에서 복음(1890년)을 받고 면천군수로 재직(1895.6.18 ~ 1896.10.14)하여 초가 8칸의 면천교회를 설립하므로 충청도에서 130년 역사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되었다.
1908년 박지양 면천군수를 비롯한 면천향교 유림, 면천교회 진력으로 초가 8칸을 구입하여 2학급 편제로 사립면향학교(면천공립보통학교 전신)를 설립하고 인재양성에 이바지하였다.
1916년 원세화 전도사가 원용은, 박창신, 이종원 등과 면천교회 성도들에게 나라사랑과 신앙지도를 하였고 후일 이들과 면천공립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17년 이상만이 면천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성도들에게 나라사랑을 일깨웠으며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요원으로 투신하여 김구, 이동녕을 도와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9년 원세화 전도사가 1919년 10월 면천교회 성도들과 학생들이 독립자금을 갹출하여 상해임시정부요원 정진에게 전달했음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면천교회와 성도가 큰 박해를 받고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2024년 면천교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유지재단으로부터 부지 사용 승낙을 받아 당진시에서 면천공립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 역사기념관을 건립하고 후손들에게 그 숭고함을 보존하고 전승하기에 이르렀다.
2025년 3월 10일 면천감리교회 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