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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金法隣, 1899~1964)은 3·1운동 당시 동래장터 만세시위에 관여하고 1919년 4월 상해로 도항하였다. 1920년 의용승군을 계획하고 국내로 귀환했으나 좌절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파리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28년에 귀국하였다. 1929년에는 조선어학회가 주관하는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준비위원으로 참가하였다. 1930년에는 만당을 조직하여 일본동경지부 책임자로 활동했고, 1938년 만당사건으로 체포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체포되었다. 해방후 불교중앙총무원장으로 불교혁신운동에 힘썼으며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52년에는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5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범산 김법린 선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서울 도봉구 쌍문1동 김법린 선생의 묘소 앨범을 같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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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락동 국군묘지, 노포동 6.25참전용사기념비, 장산 모정원 강근호장군 추모비, 부산경찰청 순직경찰관 추모비, 어린이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