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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매에도 잊지 못할 곡성경찰서 9월 30일 사건 먼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며 전상 동지와 유족에게 위안을 드린다. 회고하면 6.25사변 직후 지리산에는 인민군 패잔병과 공비 약1500명이 집결하여 살인과 방화 약탈 등 만행을 자행 이를 소탕하는 데는 5년이 걸리고 아군 6333명이 목숨을 바첬다. 이 당시 소위 인민유격군 남반부 총사령관 이현상은 1951년 9월 29일 밤 8시 공비 1500명을 지휘 곡성경찰서를 습격하여 응원부대 진입로를 차단하고 주력으로 시내를 포위 공격하였다. 이때 경찰병력은 120명 중과부적이였으나 결사각오 용전분투하고 서장은 지모와 용맹으로 용병지휘하여 다음날 오후 4시까지 사수하였으나 응원부대는 저지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적은 경찰서 주위 담까지 침공하여 육박전을 하고 경찰서 안에는 시민 200여명이 피산하여 풍전등화 함락 직전이었다. 아군은 실탄이 떨어저 자결을 각오하였다. 바로 이 순간 천우신조 응원부대가 저지선을 돌파 포위 공격하자 적은 시내에 방화연막을 이용 도주하고 아군은 이를 3일간 추격하여 괴수 이현상은 지리산으로 패주 배회하다 비점골에서 군경 합동작전에 의하여 사살되었다. 이 작전에 성공하여 다수의 인명을 구출하고 적 사살 506명 생포 31명 자수 5명의 잔과를 거두고 아군 25명이 전사하였다. 9월 30일 사건의 진상은 이와 같고 이 사실은 대한민국 전생사 제7권에 수록되어 통일의 그 날까지 길이 빛나도록 현창하기 위하여 모든 전우들이 뜻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서기 1993년 4월 20일 국가유공 지리산전우회장 조방기, 곡성경찰서장 총경 장흥, 사건당시 경찰서장 구서칠, 재향경우회 곡성군 지회장 임정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