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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5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체포되었다는 1934년 11월의 언 론보도 기사와 사회주의계 독립 운동 조직인 이재유그룹(조선공 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의 활동 공간으로 대륙고무가 등장하는 1938년의 재판기록 등을 종합해 보면 1935년의 파업도 이들 사회 주의계 독립운동가들이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병옥 집터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 幹會)에서 총무간사와 경성지 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조병옥 (1894~1960)은 1929년 광주학 생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이곳 중 림동(331-13번지)에 살았다. 이 때 조병옥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널리 확산하고자 중앙상무집행위 원장 허헌(1884~1951) 등과 함 께 민중대회를 개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일본 경찰이 주요 간부들을 사전에 체포하는 바람에 민중대회는 끝내 성사되 지 못했다. 조병옥은 이 일로 징역 1년 4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 를 치렀다. 조병옥은 1945년 8·15 광복 이 후 미군정의 경무부장을 맡았는 데, 제주 4·3 사건 당시 경찰을 동 원하여 제주도민을 혹독하게 탄 압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6·25 한 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내무부장 관에 취임한 조병옥은 미군에 의 해 자행된 노근리 학살사건(충북 영동, 1950.7.26~29)의 책임에서 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군 방어선 에 접근하는 피난민에 대한 사격 방침을 결정했던 미8군사령부 주 최의 대책회의(7.25)에 한국정부 의 내무부와 사회부 고위관계자, 경찰국장도 참석했던 것으로 밝 혀졌기 때문이다. 조병옥은 1960 년 3·15 정부통령 선거에 민주당 ➏➎ ➌ ➍ ➌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서울시 중구 서소문역사공원 내) ➍ 중림동 약현성당 ➎ 대륙고무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을 전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1935.10.3) ➏ 언론에 공개된 민중대회사건 예심결정서(1930.9.10,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