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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5년 1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성소는 1921년 4월에 정식으로 폐쇄되었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비행사 면허시험을 치르지 못했던 박희 성과 이용근은 1921년 5월 22일 새크라멘토 비행장 에서 다시 면허시험을 치렀고, 7월 7일자로 국제항 공증서를 발급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국 제항공증서를 획득한 박희성과 이용근을 7월 18일 육군 비행병 참위(소위)로 임명하였다. 미주에서 비행가를 양성하여 일제와 독립전쟁을 수행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설립된 한인비행 가양성소는, 1년도 되지 못하고 폐쇄되고 말았다. 한 인비행학교의 폐쇄는 학교 창설을 주도한 인물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연적인 재해로 인해 더 이상 재정적 지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북가주 한인 재력가들이 새크 라멘토 계곡에서 대홍수가 없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벼농사를 지속했다면, 한인비행가양성소에서도 계 속해서 한인청년들이 비행술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 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성된 한인 비행가들은 원동 으로 파견되어 일제와의 공중전을 준비하는 독립군 이 되었을 수도 있다. 윌로우스에서 벼농사를 짓던 이흥만 윌로우스에서 오랫동안 벼농사를 짓고 살았던 ‘이 흥만’이 있다. 이흥만은 하와이나 북미지역으로 이 민을 온 다른 한인들과 다른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13살 때 재혼한 아버지의 계모로부터 핍 박을 받고 가출을 하였다. 인천에서 떠돌다가 1905 년 멕시코로 가는 이민배를 타고 유카탄으로 홀로 이민을 왔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에네켄 농 장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 학교를 다니며 스페인어 를 배웠다. 그의 멕시코 이름은 ‘안토니어 에두라도 리(Antonio Eduardo Lee)’였다. 어린 나이에 멕시 윌로우스에서 한 평생 벼농사를 하던 이흥 만(Antonio Eduardo Lee) 이흥만의 부인 백광순이 쓴 회고록(『Quiet  Odyssey: A Pioneer Korean Woman  in America』(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