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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비롯 한 한국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서울지역 학부모와 함께 2022년 부터 서울 시내 곳곳을 탐방하고  있다. 이번에는 서울의 동북 지역 에 있는 도봉구 근현대 역사 현장  탐방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도봉 구 일대는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 주군에 속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 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1914년 9 월 16일 완전 개통된 경원선의 창 동역(창동역은 1911년 10월 15일 부터 운영)이 있었던 관계로 일제 의 탄압이 심해진 1930년대 이후  홍명희, 송진우, 정인보, 김병로 등  여러 애국지사들의 은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도봉구 탐방은 녹천 역 1번 출구에 모여서 시작되어 정 의여학교까지 이어졌다.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⑦ 도봉구 일대의 근현 대 역사 현장 1919년 3월 26 · 27 · 29일 창동리 일대  수백명 만세시위 안내표지판도 없어 이재유 체포지 · 전태일 집터 등  알려지지 않아 홍명희 · 송진우 · 정인보 · 김병로 등  은거지 역할 하기도 106 2024년 3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글  김학규(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녹천역 1번 출구 - 이재유 체포지 전설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 가 이재유(李載裕, 1903~1944)가 한 번의 실패를 딛고 1934년 4월 14일 마침내 서대문경찰서를 탈 출하는 데 성공하여 독립운동을 계속 한 이야기는 <서대문밖 근현 대 역사현장>(《순국》 2023년 10 월호)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1935년에 터진 용산적색노조 사건의 체포망을 피해 동지 이관 술(1902~1950)과 함께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육사 자리)로 숨 어 들었던 이재유가 경성재건그 룹을 만들어 활동하던 중 다시 일 경에 체포된 것은 학생운동 담당 자 최호극과의 비밀 회동을 위해 창동역 인근 산중으로 갔던 1936 년 12월 25일이었다. 애석하게도 이재유는 최호극이 이미 일제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 었다. 이재유는 뒤늦게 상황을 파 악하고 도주를 시도했지만, 창동 역 남방 800미터 지점에 있던 철 도건널목(현 녹천역 근처)에서 일 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6년형을 언도받은 이재유는 형기 만료 이후에도 전향하지 않 았다는 이유로 청주보호교도소 에 수감되었다가, 1944년 10월 26일 40세의 나이로 옥사하고 말았다. 이재유가 건국훈장 독립 장에 추서된 것은 뒤늦은 2006 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