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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현진건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입니다. (현진건 초상, 가까운 문인들과 함께)
현진건은 1900년 9월 2일 대구 중구 계산동2가 169 일원(추정)에서 우체국장을 지내던 아버지 현경운과 어머니 이정효 사이에서 4형제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구노동학교, 1916년 도쿄 세이쇼쿠 예비학교, 1918년 상하이 후장대학 독일어 전문학부에서 공부했으며, 『개벽』에 『희생화』로 등단하여 박종화, 나도향, 이상화 등과 문예동인지 『백조』의 창간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80여 편의 소설, 수필, 평론 등을 썼으며, 김동인과 함께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였다. 또한 염상섭과 함께 한국 그대 사실주의 문학의 기초를 확립한 개철자로서, 이 땅의 비애를 문학으로 형상화하여 민족의 슬픈 현실을 고발하였다.
1936년 8월 동아일보사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손기정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세계를 제패하자 손 선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게재한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고, 독립운동가였던 현진건은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고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청빈과 양심을 지키며 빈곤하게 만년을 보내다가 1943년 4월 25일 결핵으로 동대문구 제기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고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현진건의 주요 작품으로는 『빈처』,『술 권하는 사회』,『운수 좋은 날』, 『할머니의 죽음』, 『불』, 『B사감과 러브레터』, 『고향』, 『무영탑』, 『불국사 기행』, 『적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