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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경 (당시42세) 대구 현대공원에 안장 1961년 대구 출생 1984년 영남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1985년 서울 기독교여민회 활동 1988년 대구 우신직물 등 섬유공장에서 노동운동, 달구벌 교회활동 1988년 대구노동자협의회 활동 1992년 대구노운협 열린터 대표 1998년 전국노운협 총무부장 2000년 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APWSL) 동북아지역 책임자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설립추진위원 2002년 6월 대장암 판정 후 수련원 등에서 자연치료 2002년10월 3일 뇌졸증으로 쓰러져 대구, 서울 등에서 치료 2003년 1월 28일 오전 7시 10분 경상병원에서 운명 |21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5년 대학을 졸업한 후 기독교 여성민우회 활동으로 사회운동을 시작 하였으며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지켜보면서 종교단체활동의 한계를 넘어 대중적 노동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동지는 자신의 고향기도 한 대구지역의 섬유노조 건설과 섬유노동자들의 연대 조직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위 해 노력하기도 했는데 ’94년 물가폭등과 민생파탄에 항의하는 노동자시민 토론 회를 조직하였고 공단지역을 순회하며‘군사독재 잔재 청산, 민주대개혁’을 위 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96년에는 김영삼 정권의‘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전면무효화’를 위한 전국노동자 총파업투쟁에 참여하였다. 또한 ’97 년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IMF협약 무효화, 나라경 제 파탄주범 재벌해체, 민중생존권 쟁취’의 요구를 내걸고 정치실천을 전개하기 도 하였다. 동지는 전국노동자 통일한마당과 범민족대회에 대구노동자들의 조직 적 참여를 주도하기도 하는 등 자주통일운동에도 앞장섰으며 또한 열린터의 풍 물과 노래강습 등을 통해 노동자 문화활동을 활성화시켰다. 동지는 ’88년부터 APWSL 한국위원회 책임자로서 활동했고, ’00년부터는 동 아시아지역 책임자로서 풀뿌리 국제노동자연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동지는 ’02년 대장암 판정 후 수련원 등에서 자연치료를 통한 치유노력을 계속 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42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