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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의사 장진홍(張鎭弘) 선생의 묘소
조국 독립에 몸바치신 선생의 호는 창여, 본관은 인동으로, 1895년 6월 6일 칠곡군 인동면 옥계(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1910년 인명학교(인동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1916년 조선보병대 제대후 광복단에 가입 활동하면서,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독립군 80여명을 모집 훈련시키고, 1919년 귀국하여 3.1운동과 일제의 만행자료를 세계에 발송 폭로하였다. 1925년 대구에서 이원록(시인 이육사)등과 비밀결사하고,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하였다. 1928년 일본 오사카로 잠입하여 동향인 김철호(광복후 기아산업(주) 창업)의 도움으로 다음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29년 대구에서 체포되어 대구 법원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1930년 7월 21일 상고심에서 확정이 되자 '일제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내손으로 죽겠다'면서 집행전날 1930년 7월 31일 향년 35세로 옥중 자결하였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