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동남아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 105 호?)로 가서 귀화증명서와 중국공안국에서 발급한 ‘호조(護照, 여권)’를 제시하였다. 안창호는 이를 통 해 자신의 국적이 중국임을 계속 주장하였지만 피체 되고 말았다. 도산이 체포당하자 미국에 있는 장남 안필립은 아 버지를 석방시키기 위해, 도산은 ‘한국인’이 아니고 중국에 귀화한 중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영사관에서 체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상하이에 있는 올맨 (Norwood F. Allman)이라는 변호사에게 아버지의 석방을 주선하였다. 일제는 도산을 국내에 압송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하였고, 대전형무소 등에서 오 랜 감옥살이를 했다.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 학 부속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창호가 대전형무소에서 석방되어 있을 당시 그 의 동지들은 그를 극진히 돌봐주었다. 안창호는 진 남포에서 자신을 2년간 극진히 모셨던 오덕환에게 필리핀 방문 당시 사용했던 중국 호조를 맡겼다. 오 덕환은 도산이 별세한 이후 중국 호조를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있었다. 해방이 된 이후인 1959년 3월 헐 리우드의 유명배우가 된 안필립은 영화 촬영을 마 치고 홍콩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도산의 지지자들 인 김장섭(金長燮)과 방극표(房極杓)가 안필립에게 1929년 도산이 필리핀을 순방할 때 소지하였던 중 국 호조를 전달했다. 안필립은 도산의 동지들이 소 중히 간직해 왔던 중국 호조를 가지고 미국으 로 갔 다. 안필립이 1978년 별세하고 그가 갖고 있었던 중 국호조는, 1984년 도산자료가 독립기념관에 기증될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산의 독립에 대한 꿈 과 민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동지들의 애정이 담긴, 참으로 사연이 많은 여권인 것이다. 위 중국 호조의 안창호 사진과 내용 1 · 2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