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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 양한묵 생가
선생은 전남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서 양상태(梁相泰)와 낭주최씨(郎州崔氏)를 부모로 1862년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경조(景朝) 또는 길중(吉仲), 호는 지강(芝江)이다. 19세에 풍산홍씨(豊山洪氏)와 혼인하면서 처가가 있는 나주군(羅州郡) 남평면(南平面) 송촌(松村)으로 이주하기전까지 이곳에 거주하였다.
※ 현재 산포면(山浦面) 소재
지강 양한묵 기념관
지강 양한묵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중 유일하게 옥중 순국하신 분으로 기념관은 선생께서 옥사하신 서대문형무소의 외형을 본따서 만들었다. 1919년 2월 27일 천도교를 대표하여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3월 1일 민족대표들과 함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여 대한독립을 외쳤으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 길선주,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는 불참하였음.
일제의 가혹한 취조를 받던 중 서대문형무소에서 56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선생의 시신은 서울 수철리에 안장하였다가 3년 후 화순군 앵남리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