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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6년 3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을 벌였다, 이때 쌀 염매권을 일 본인에게는 전부 지급한 반면, 조 선인에게는 겨우 절반 정도 지급 한 상황에서 품절되자 조선인들 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항의하 기 시작했다. 이에 조선총독부 순 사는 조선인을 강제로 학교 밖으 로 몰아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여성 한 명이 넘어져 기절하는 사 태까지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수천의 조선인 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학교 담 장을 부수고 들어가 폭력을 행사 한 일본 순사를 찾아 폭행을 가했 다. 사태가 확산되자 일제 당국은 헌병을 동원하여 조선인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양춘심(견지동), 이근영(청진동) 등 28명의 지역 주민은 소요죄 등 으로 징역형과 태형, 벌금형을 감 내해야 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 월 18일 박동(현 수송동 85) 에 서 영 국 인 신 문 기 자 베 델 (Ernest Thomas Bethell, 裴 說, 1872~1909)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하고, 양기탁 (梁起鐸, 1871~1938)을 총무 로 하여 창간되었다. 이때 박 은 식 ( 1 8 5 9 ~ 1 9 2 5 ) · 신 채 호 (1880~1936) 등이 논설위원으 로 참여하였다. 이후 사업이 확 장되면서 1907년 1월 환구단(圜 丘壇) 아래의 석정동(石井洞) 입 구로 사옥을 이전하였고, 이로써 대한매일신보의 ‘박동 시대’는 마감되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의병전쟁 을 비롯한 항일투쟁에 대한 사실 보도와 국채보상운동에도 관여하 면서, 여러 기사와 논설을 통해 일 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국민의 애 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담당하 였다. 최초로 공화정을 지향한 비 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기관지 역할도 대한매일신보의 몫이었 다. 이러한 이유로 베델은 영국인 이었음에도 일제의 집요한 추방 공작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베 델은 두 차례에 걸쳐 주한영국총 영사관 법정에 서야했고, 3주간 상하이 영국공사관 형무소에 구 금되기까지 했다. 창간 사옥 터 표 석은 수송공원 북편에 있다. ⓫ ⓫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종로구가 공공조형물 1호로 지정했다(티브로드 제공) ⓬ 중학동 서울청년회관의 압수수색과 회원검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1923.9.3) ⓭ 서울청년회 지도자의 한 명인 김영만의 「일제감시대상인물 카드」 ⓬ 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