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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서울지역 학 부모와 함께 서울 곳곳을 탐방하 고 있다. 이번에는 서울역과 그 뒤 편 중림동·만리동 일대를 탐방한  근현대 역사 현장 이야기를 소개 한다. 탐방은 서울역 강우규 의사  동상 앞에서 시작하여 서소문 역 사공원과 대륙고무 터, 손기정체 육공원을 거쳐 충정공 민영환동 상과 미동초등학교까지 걸으면서  이 일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㉕ 서울역과 그 뒤편 중림동·만리동 일대 3·1운동 2차 시위, 강우규 의거 현장 서울역 국내 최대의 천주교 순교 성지 서소문역사공원 3·1운동 시위대, 3월 22일 아현까지 진출 손기정기념관 · 민영환 동상 등 미동초교 교사 출신 최주영 흔적 없어 104 2025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글  김학규(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서울역, 2차 시위운동과 강우규의사의 의거가 있던 곳 남대문역(현 서울역) 앞은 3·1 운동 당시인 1919년 3월 5일 대 규모 2차 시위운동이 시작된 곳 이다. 이날의 시위는 김원벽 (1894~1928, 연희전문), 강기덕 (1889~?, 보성전문)을 비롯한 전 문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준비 되었다. 김원벽과 강기덕이 인력 거를 타고 ‘조선독립’이라 쓴 큰 깃발을 휘두르며 지휘하고 고종 의 장례를 치르고 귀향하던 사람 들을 포함한 수만의 군중이 참여 한 이날의 시위는 남대문을 거쳐 두 대로 나뉘어 보신각에서 다시 만나는 모양새로 진행되었다. 남대문역 앞은 강우규(1859~ 1920) 의사의 의거가 있던 곳이 기도 하다. 강우규 의사는 65세이 던 1919년 9월 2일 이곳에서 새 로 부임해 오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처단하고자 폭 탄을 던졌으나, 애석하게도 성공 하지 못했다. 강우규 의사는 체포 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이듬해 11 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하였다. 강우규 의사는 사형 집행 을 앞두고 ‘절명시’를 남겼는데, 서울역 앞 강우규 의상 동상에 새 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