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page
104 2025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된 한인 군인 · 군속 · 위안부 일본군은 필리핀을 침공하여 1942년 1월 2일 오 후 3시에 마닐라를 함락시켰다. 동남아지역으로 전 선이 확대되면서, 일제는 부족한 병력과 인력을 메 우기 위해 한국인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갔다. 필 리핀에 끌려간 사람들은 처음 군속과 일본군위안부 등에 국한되었지만, 필리핀전이 급박해지자 일제는 한인 청년들을 전장터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1944 년 5월 제30사단, 10월 제26사단, 12월 제19사단 등이 필리핀지역에 파견됨으로써 각 사단에 소속되 어 있던 한인병사들도 필리핀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필리핀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사단 에는 수많은 한인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제 30사단과 제19사단, 제26사단에는 징병, 학병, 지원 병 등으로 끌려간 한인병사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들 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전선에 배치되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인 병사들은 루손섬, 레이테섬, 민다나오섬, 네그로스섬 등 각지에서 일 본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여, 미군의 공습과 현지 미비군(美比軍)과의 전투로 인해 전사하거나, 현지 의 풍토병인 말라리아 등으로 인해 병사하거나, 혹은 전쟁이 끝날 무렵 적의 공격을 피해 밀림과 산속을 헤메다가 아사(餓死)하였다. 1945년 1월 9일 미군이 루손섬을 점령하고 마닐라를 탈환하였다. 필리핀지 역에 파견된 한인 군인 · 군속 · 위안부들은 1945년 8 월 15일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루손섬 라구나 호반 근처에 있는 문틴루빠(Muntinlupa) 포로수용 소에 있다가, 1945년 11월부터 순차적으로 귀환하 였다. 30년 만에 되찾은 도산의 필리핀 방문 당시 사용한 여권 도산 안창호는 필리핀을 방문한 후 중국 상하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인해 프랑스조계 경찰과 일제에 검거되었다. 프랑스경찰은 안창호를 체포했는데, 도산은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도산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2년 중국정부에 귀화 를 신청하여, 제8531호의 「중국귀화증명서」를 취득 하였던 것이다. 프랑스조계 경찰들은 그에게 중국인 임을 증명해 보라고 했다. 이에 안창호는 그의 동서 인 김창세의 병원이 있는 환룡로(環龍路) 206호(260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사용한 50센타보 군표 안창호가 필리핀에 가기 위해 받은 중 국호조(여권)의 표지